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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수역과 인접 해저자원 뽑아갈 우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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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호 10면

중국과 일본은 지난달 18일 수십 년 동안 영유권 분쟁을 벌여온 동중국해에서 유전·가스전을 공동개발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양국 언론들은 ‘영토보다 자원에 초점을 맞춘 윈-윈 실용외교’ ‘중·일 양국의 전략적 화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 지역에 연고를 가진 한국의 이해관계는 완전히 무시됐다. 해양 전문가들은 “동중국해 일부는 국제법적으로 한·중·일 3국의 주권이 겹치는 지역이기 때문에 한국의 권리를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중·일 양국이 이번 합의를 바탕으로 공동개발을 확대할 경우 해저에 걸쳐 있는 광상(鑛床)에 묻힌 우리 자원이 그대로 새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1970년대 한국이 석유자원 확보를 위해 일본과 공동개발키로 한 제주도 남단의 ‘제7광구’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일각에선 우리 외교당국의 미온적 대처를 비판한다.
 
한국이 배제된 ‘광물의 보고’ 동중국해
중·일이 공동개발키로 합의한 해역은 일본이 주장하는 배타적 경제수역(EEZ)의 경계선에 걸쳐 있는 룽징(일본명 아스나로) 가스전 주변 해역이다. 대륙붕이 끝나는 지점을 영해로 주장해온 중국 입장에서 보면 주권 해역 안쪽이다. 개발 면적은 2600㎡. 성과가 있을 경우 동중국해 전체의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양국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번 합의에서 양측은 중국이 외국 회사와 손잡고 2006년 8월부터 천연가스를 생산하고 있는 춘샤오(일본명 시라카바) 가스전에 일본 기업이 투자할 근거를 마련했다. 동중국해 해저에 묻힌 자원의 추정 매장량에 대해선 평가가 제각각이지만 중국 유전 전문가들은 천연가스 5조㎥, 석유 1000억 배럴 정도라고 추산한다.

중·일, 한국 빼고 동중국해 자원 공동개발

문제는 바다를 사이에 둔 한·중·일 3개국이 아직 해역 경계를 확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EEZ 경계 획정이 합의되기 전까지는 관련국끼리 협의해 이를 공동개발하는 게 국제관례다. 해양법 전문가인 김현수 전 해군대학 교수는 “유엔 해양법 협약에 따르면 이해와 상호협력 정신을 전제로, 해양 경계가 획정되기 전 공동 이용을 위한 잠정 협정을 체결할 수 있다”며 “당사국 중 하나인 한국을 뺀 채 중·일 양국이 공동개발에 합의한 것은 분명한 협약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중·일은 이번 합의에서 지난해까지 공동개발 해역으로 검토했던 룽진-1 가스전을 대상에서 제외했다.
 
“해저 자원을 지켜라”
시추봉을 꽂은 곳이 어느 한 나라의 영해 안이라 해도 그곳에서 나오는 자원이 반드시 그 나라의 소유라고 보기는 힘들다. 자원이 해저에선 경계선 없이 분포돼 있기 때문이다. 경희대 김찬규 명예교수는 “국제 판례에선 ‘광상의 일체성’이라고 부른다”면서 “그동안 중국 측의 일방적인 개발에 일본이 반발한 것도 ‘중국이 자기 쪽에 파이프를 박아 일본의 자원을 빼내 간다’는 논리였다”고 말했다. 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면서 내건 명분 중 하나도 비슷한 사례다. 이라크는 당시 선전포고를 통해 쿠웨이트가 국경선 부근에서 채굴한 석유에 대해 ‘도굴’이라고 주장하며 24억 달러의 배상금을 요구했다.

현재로선 중·일의 동중국해 공동개발이 우리 자원을 직접적으로 빼낸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3국 간 해역 경계 획정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확한 해저 자원 조사를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대처해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김현수 교수는 “룽진-2 해역도 제7광구와 연결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김찬규 명예교수는 “현재로선 제주도 남단의 7광구 등과 공동개발 수역이 거리가 떨어져 있긴 하지만 중·일이 공동개발을 본격화하고 해역을 넓혀 나갈 경우 한국의 이익이 상당히 침해받을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일본이 생각하는 중·일 해역의 중간선은 제7광구와 600m밖에 차이가 나지 않고, 중국이 생각하는 해양 경계선 역시 제주도 남단 제7광구 쪽으로 깊숙이 침투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잊혀진 ‘검은 진주’ 제7광구
1974년 한국과 일본이 맺은 한·일 대륙붕 공동협정(시한 2028년)은 일본 측의 회피로 무력화되고 있다. 정부는 4월 한·일 정상회담에서 제7광구 공동개발 재개 문제를 의제에 올리려 했으나 일본이 거부해 무산됐다. 82년 바뀐 유엔 해양법 협약을 기초로 체결한 한·일 어업협정에 따르면 제7광구 8만2000㎡는 일본 측 어업 수역에 포함된다. 따라서 일본이 이를 의식해 표면상 채산성이 낮다는 이유를 들며 시간을 끄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제7광구 개발 협정은 한국이 독자적으로 개발할 수 없게 돼있고, 50년 수명의 한시 협정이어서 자동 폐기된다. 제7광구에서 한·일 양국은 일곱 차례 시추 작업을 했다.

문태영 외교통상부 대변인은 중·일이 동중국해 자원 공동개발에 합의한 직후인 18일 “한·중·일 3국의 해역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 수역은 한국이 자원에 대한 권한을 미치는 지역”이라며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 당국자는 “2000년 양국이 공동개발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한 이후 우리 입장을 개진하며 국익이 침해되지 않도록 노력해 왔다”고 말했다. 룽진-1 해역이 공동개발 해역에서 빠진 것도 그런 노력의 성과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지난해 말 중국과 일본이 공동개발 합의에 속도를 낼 때 우리 정부는 넋을 놓고 있었다”면서 “이제라도 한·중·일 3국의 공동개발을 적극 주장하고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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