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 튀던 그들의 삶이 부럽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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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호 05면

연극 39소설가 구보씨와 경성 사람들39

연극 ‘소설가 구보씨와 경성 사람들’은 1933년 12월 어느 하루, 소설가 구보씨가 경성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소설의 소재를 찾아내는 모습을 코믹하게 그린다. 연극 ‘조선형사 홍윤식’은 33년 늦은 봄, 경성 ‘죽첨정’의 영아 머리 유기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 홍윤식을 주인공으로 한 추리물이다. 2007년작인 두 연극은 설정 연도가 같지만 분위기는 완전히 다르다.

-드라마틱한 시대가 낳은 천재 캐릭터

경성 한복판의 모던보이 ‘구보씨’와 달리 ‘홍윤식’은 경성 변두리에 사는 가난하고 무지한 사람들이나 얼치기 모던보이들을 상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올 11월 무대에 오르는 ‘깃븐 우리 절믄날’(가제)은 35년 실존 인물 이상(李箱)과 정인택 그리고 카페 여급 권영희를 둘러싼 삼각관계 이야기, 즉 로맨스물이다.

같은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이렇게 장르도 다양한 세 작품을 쓰고 연출까지 한 이는 성기웅씨다. 일본 극작가 히라타 오리자의 ‘서울 노트’와 ‘과학하는 마음’ 3부작, 가라 주로의 ‘알리바바의 밤’을 국내에 번역·소개한 지일파(知日派) 연극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2000년대 초 교환학생으로 1년 동안 도쿄에 머문 적이 있다. 거기서 성씨는 “20세기 초 우리 지식인 대부분이 일본에서 일본어로 학문을 배웠고, 어쩌면 그것이 한국 근대의 출발, 현대 도시를 살아가는 우리 일상생활의 바탕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상당한 충격과 혼란을 느꼈다.” 그러면서 한 세기 전 도쿄 거리를 배회하던 조선인 유학생들을 상상해보게 됐다.

당시 모던 보이들은 천재였다. 봉건과 현대, 동양과 서양, 조선과 일본, 민족과 개인 같은 극단의 것들이 갈등하고 충돌하면서 스파크를 일으키듯이, 전혀 새로운 시대가 시작될 때는 독특한 캐릭터의 천재적인 인물들이 나오게 마련인 것이다. 성씨에게 그들은 “예술가의 원형이자 존경하는 선배”다. 모던 보이들의 인생 또한 하나같이 드라마틱했다. 전쟁과 테러가 빈발하고, 제국주의의 폭압적 통치 하에서 친일 행위나 월북 등으로 굴곡진 삶을 살았다. 작가에게 그 시대는 “흥미로운 인물과 사건의 보고”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성씨와 같은 젊은 연극인들은 역사의식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을 위험을 무릅쓰면서도, 그 같은 억압적 시대상을 표출하기보다 당시의 일상적인 삶을 섬세하고 발랄하게 표현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8월 31일까지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한아름 작, 서재형 연출의 연극 ‘청춘 18대 1’이나, 지난해 영화계에서 러브콜을 받은 이해제 작·연출의 연극 ‘다리퐁 모단걸’도 그렇다. 이 때문에 뮤지컬 ‘명성황후’나 안중근 의사를 소재로 한 뮤지컬 ‘영웅’ 같은 선배들의 작품과 대조를 이룬다.

특히 성기웅씨가 심혈을 기울이는 부분은 30년대에 이르러 현대어에 아주 가까워진 경아리말(서울말)을 연극적 언어로 복원해 내는 일이다. 영국에서는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의 언어가 규범인데, 우리나라는 신파극이나 번역극에서 연극의 언어가 정립되고 말았다. “과장되거나 틀에 박힌 낭송조의 언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기준, 언어의 원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성씨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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