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한 친구 “일출 보러 나간 줄 알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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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왕자씨와 한 조로 금강산 여행을 함께했던 관광객들이 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와 잠실운동장역 앞에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11일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53)씨 피살 사건이 알려지자 시민들은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평범한 50대 주부가 관광을 갔다가 북한군의 총격에 사망한 데 대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가슴 부분 관통”=박씨의 시신은 이날 오후 1시 남북 출입국사무소를 통해 속초로 옮겨졌으며, 2시13분 속초병원 지하 1층 영안실에 안치됐다. 박씨의 시신을 검안한 속초병원 서명석 병원장은 “등 뒤쪽에서 날아든 탄환에 의해 흉부에 총상을 입고 폐 속에 혈흔이 고여 호흡 곤란 및 과다 출혈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총상 부위는 우측 등쪽에서 가슴 부위 관통상과 좌측 엉덩이 부분 관통상 등 2곳이었다”고 말했다.

검안에 참여한 박용호 속초지청장은 “가슴 쪽에 총상을 먼저 당한 뒤 이 충격으로 쓰러지면서 두 번째 총탄이 엉덩이 부위를 관통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검시 검사의 보고를 받았다”고 말했다.

박씨의 시신은 오후 6시15분쯤 앰뷸런스에 실려 속초를 출발, 서울 소재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옮겨졌다. 국과수는 박씨의 사인을 규명하기 위한 부검 작업을 벌였다.

◇“박씨, 해변에 가고 싶어해”=박씨는 9일 친구 3명과 함께 2박3일 일정으로 금강산 관광에 갔다 11일 돌아올 예정이었다. 박씨의 일행은 이날 동해선 남북출입사무소에서 1차 조사를 받았다. 친구 박명례씨는 “오전 5시10분쯤 일어나 보니 박씨가 없었다”며 “박씨가 해변에 나가보고 싶다는 말을 한 것이 생각나 해돋이를 보러 간 줄만 알았다”고 진술했다. 친구 박씨는 “그러나 오전 7시30분이 되도록 박씨가 나타나지 않아 현대아산 측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숨진 박씨는 금강산 여행 출발 때부터 지갑을 잃어버리는 등 불운을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동행 여행객들에 따르면 9일 출발 당시 박씨 등 2명이 출발 시간에 늦어 올림픽대로 중간에서 버스를 만나 합류했다고 한다. 박씨 등은 뒤늦게 버스에 오르면서 “죄송하다”며 사과했고, 일행끼리 이야기를 나누면서 “지하철에서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말했다고 여행객들은 전했다.

충격 속에 귀국한 이들 여행객은 2개 조로 나뉘어 한 조는 버스 3대로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앞까지 와 해산했고, 나머지는 버스 1대로 광화문에 도착했다. 박씨 피격 소식에 놀란 다른 여행객들의 가족 10여 명이 자가용을 몰고 종합운동장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버스에서 내리는 식구들을 반갑게 맞이하기도 했다.

◇시민들 ‘경악’=회사원 이경진(45)씨는 “새벽에 아주머니가 산책을 하다 군 경계지역에 들어갔다는 부분은 의문으로 남는다”며 “하지만 비무장 민간인에게 총을 쏜 이유에 대해선 정확한 규명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수단체인 반핵반김국민협의회는 “민간인을 무참히 살해한 것은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될 수 없는 사안”이라는 성명을 냈다.

그러나 시민 이정호(28)씨는 “놀랍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 일이 정치적으로 이용되거나 남북 관계 악화를 가져오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날 금강산 관광 후 돌아온 관광객 김모(삼척시)씨는 “끔찍한 일이 벌어진 줄 금강산 현지에 있을 때는 전혀 몰랐다”며 “그저 섬뜩하다는 생각만 든다”고 말했다.

속초=이찬호 기자, 서울=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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