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대우·쌍용차 동시파업 “산별노조가 지닌 폐해 총집결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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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금속노조 현대·기아·GM대우·쌍용차지부가 10일 2시간에서 4시간씩 부분파업을 벌였다. 이번 파업은 금속노조의 지침에 따른 것이다. 완성차 4개사 노조가 한꺼번에 파업을 한 것은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초 이후 11년 만이다.

이번 동시파업은 97년과는 출발점이 다르다. 97년 파업은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담은 노동법 개정안을 신한국당이 새벽에 국회를 열어 날치기 통과시킨 데 대한 항의였다. 민주노총은 물론 한국노총 산하 노조까지 노동계 전체가 파업을 했다.

이에 비해 이날 파업은 산별노조인 금속노조의 실력행사 성격이 강하다. 산별노조는 비슷한 업종의 기업 근로자들이 하나로 묶인 노조다. 자동차 4사가 속해 있는 금속노조는 파업 명분으로 ‘산별교섭권 쟁취’를 내세웠다. 금속노조 산하 모든 사업장의 노사가 똑같은 협약안을 놓고 교섭하자는 것이다. 사측은 ‘기업 규모와 경영사정이 다른데 일괄 협약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번 파업의 부작용은 금속노조가 2006년 본격적인 산별노조로 재출범할 때부터 예상됐다. 당시 현대자동차 등 완성차 4사와 미포조선 등 대기업 사업장이 산별노조로 전환하면서 금속노조는 산별노조의 틀을 갖췄다.

노동계는 산별노조를 만들며 ^조직 확대 ^정치적 영향력 강화 ^기업 간 격차 해소를 내세웠다. 여러 기업 노조의 힘을 집중시켜 교섭력을 극대화하는 전략이다.

금속노조의 전략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 쇠고기 수입 반대와 같은 정치적인 이슈를 걸고 금속노조에 속한 기업 노조원들의 파업을 끌어낼 수 있게 됐다. 현대차 지부와 같이 노조원들의 반발이 있더라도 무시된다. 노조원 개인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것이다.

파업으로 인한 기업이나 국가 경제의 타격은 그만큼 커졌다. 정치적인 이슈나 이번처럼 단체교섭을 내걸고 파업을 벌인다. 파업 횟수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같은 업종이라도 기업에 따라 근로조건이나 임금조건이 다양하다. 이런 다양성은 무시될 수밖에 없다. 산별교섭 결과에 따라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임금조건을 맞추다가는 도산을 하거나 아예 문을 닫는 기업이 생길 수 있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임금 격차 해소라는 명분이 있기는 하지만 자칫하다가는 중소기업이 견디기 힘들게 되는 것이다.

박영범 한성대 교수는 “금속노조의 얘기처럼 획일적인 근로조건을 강요하면 이를 맞추지 못하는 중소기업은 경영상 어려움에 봉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대기업도 기업의 특수한 사정에 맞춘 인적자원관리를 할 수 없어 인력의 경직성이 심화되고 결국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최재황 한국경영자총협회 이사는 “금속노조의 이번 파업은 산별노조가 보여줄 수 있는 폐해의 종합선물세트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특정 기업을 겨냥한 집중 파업은 해당 기업에 심각한 타격을 준다. 민주노총 소속 산별노조의 하나인 보건의료노조 소속인 세종병원이 대표적인 예다. 김동기 세종병원 경영지원본부장은 “2006년 보건의료노조가 우리 병원을 대상으로 투쟁을 벌이는 바람에 분규가 7개월간 계속됐다”고 말했다.

김기찬 기자

◇산별노조=자동차·금속·조선처럼 비슷한 산업에 속한 각 기업 노조가 뭉쳐서 만든 거대 단일 노조다. 산별노조가 되면 개별 기업 노조에는 사측과의 교섭 권한이 없고, 그 권한은 중앙노조가 갖는다. 현대차노조는 금속노조에 가입해 금속노조 현대차 지부가 됐다. 따라서 금속노조가 파업을 결정하면 현대차 지부는 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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