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검증 틀 만들기 더딘 걸음 예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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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월여 동안 중단 상태이던 북핵 6자회담이 10일 재개됐다. 지난달 26일 북한의 핵 목록 신고서 제출과 미국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절차 개시로 회담 재개 여건이 충족된 데 따른 것이다. 이번 회담은 북한의 신고 내용에 대한 검증체제를 마련하는 데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하지만 북한과 미국 등 주요 참가국들의 입장 차이가 드러나고 있어 이번 회담에서 진전된 성과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일본이 자국민 납북자 문제를 이유로 대북 에너지 지원 참여를 유보한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도 회담 진전을 더디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번 회담은 기존의 6자회담과 달리 ‘수석대표 회담’이란 형식을 취하고 있다. 대표단의 수를 대폭 줄이고 회의 진행 방식도 유연하게 함으로써 보다 실무적인 논의와 협상이 이뤄지도록 하자는 참가국들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서로 상대방의 양보를 재촉하고 상반되는 입장을 조율하면서 비핵화를 향한 밑그림을 그린 기존 회담에 비하면 이번 회담은 실무적 성격이 강하다.

회담 의제는 미국 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의 말처럼 검증 틀 확립에 집중되고 있다. 북·미 양측은 사전 협의를 통해 큰 원칙에는 이미 합의한 상태다. 미국은 ▶북핵 시설에 대한 현장 방문 조사 ▶핵 시설 지역의 토양 등 환경 샘플 채취 ▶북한 과학자들에 대한 면담 조사 ▶핵 시설 설계도 등 기록 제출 등이 그 골자다. 미국은 이 같은 검증 활동 결과 및 북한이 이미 제출한 신고서와 핵 시설 가동 기록을 대조하면 북한 핵 개발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세부 내용에서는 입장 차이가 존재한다. 정부 소식통은 “효과적인 검증이 되려면 검증팀이 예고 없이 원하는 장소를 방문 조사하는 불시 사찰이 이뤄져야 하지만 북한이 흔쾌히 받아들일 태세가 아니다”고 말했다. 북한은 또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기술진이 검증팀에 포함되는 문제에 대해서도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핵 보유국이 아닌 한국·일본의 검증 참가 수준을 결정하는 것도 논란이 예상된다.

미국은 세부적인 검증 절차와 방안을 담은 검증의정서를 마련해 북한과 합의한다는 전략이다. 테러지원국 해제 조치가 8월 11일 발효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북한도 검증 틀 마련에 협력해 올 것으로 미국은 기대하고 있다.

◇일본, 대북 지원에 계속 난색=6자회담 참가국들은 지난해 북핵 시설 불능화에 대한 보상으로 북한에 중유 100만t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지원키로 합의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북한에 지원된 에너지는 40만t 수준에 그치고 있다. 북한은 지난주 외무성 담화를 내고 조속한 약속 이행을 촉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일본은 자국민 납북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여전히 지원에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원량 분담과 지원 시기를 결정하는 작업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고 있다. 그사이 북한은 “에너지 지원이 완료돼야 다음 단계(핵 포기 논의)로 넘어갈 수 있다”며 핵 연료봉 인출 등 불능화 작업 속도까지 늦추는 전술을 쓰고 있다.

베이징=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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