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올리버 스톤 감독의 "닉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3면

올리버 스톤감독의 영화에서 미국의 대통령이란 자리는 초라하다.이 초라함이란 어떤 거대한 배후세력의 조종에 의해 미국대통령이 결정된다는 강한 암시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 배후세력인 이익집단은 대통령의 정치생명은 물론 진짜 생명까지 좌지우지한다.거대한 음모의 무대에서 대통령이란 주연을 맡은 「꼭두각시」일 뿐이다.
존 F 케네디대통령의 암살이 미국의 정보기관.군산복합체.재벌등으로 구성된 보수집단의 음모라는 내용을 담은 『JFK』로 미정가에 한차례 논쟁의 회오리를 일으켰던 스톤이 이번에는 『닉슨』으로 또 한차례 미국대통령을 도마위에 올려놓았 다.하지만 이번에는 전보다 많이 조심스러워지고 화해와 용서의 기운을 느끼게한다.스톤이 중년에 접어들면서 세상이 그렇게 간단치만은 않다는사실을 절감한 것일까.
스톤은 『JFK』에서 케네디 암살사건을 나름대로의 시각으로 「해결」했지만 『닉슨』에선 관객들에게 판단을 맡기는 조심스러움을 보여준다.
영화 『닉슨』의 전반부는 이익집단이 케네디를 암살하고 보수적인 닉슨을 당선시켰다는 암시를 주는 점에서 『JFK』와 일맥상통한다.하지만 스톤은 닉슨이 케네디가 암살될 것이란 사실을 넌지시 암시받고도 가만히 있었다는 공격을 하면서도 후반부에 들어선 슬그머니 닉슨의 인간적 면모와 공적들을 나열함으로써 닉슨에대한 결론을 유보해버린다.
사실 미국의 37대 대통령인 닉슨만큼 재임때 젊은 세대로부터비난받은 대통령이 없다.베트남전쟁은 그의 재임때 반전데모로 대학가를 들끓게 했고,워터게이트사건으로 그는 결국 불명예 퇴진하게 된다.그러나 닉슨은 『나는 중국.소련과 화해 하는 업적을 쌓았는데 왜 국민들은 나를 미워하는가』라고 통탄한다.
고뇌하는 닉슨이 링컨기념관에서 히피 젊은이들과 토론하는 장면은 인상적이다.거기서 한 여대생이 『제도의 문제지요.당신은 전쟁을 끝내고 싶지만 당신도 마음대로 할 수 없지요』라고 공격한다.이를 듣고 닉슨은 『19세짜리도 아는 사실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며 괴로워하고 그 후 보수세력으로부터의 의식적인 독립을시도한다.그러자 보수세력은 더 이상 닉슨을 밀어줄 수 없다는 생각을 품게 된다.
스톤은 이같은 미국정계의 이면 이야기와 더불어 닉슨 개인의 면면을 어린 시절의 플래시백을 삽입시켜 보여주고자 시도한다.가난한 농부의 집에서 태어난 닉슨은 청교도적인 어머니로부터 강한영향을 받고 자랐으며 결핵으로 형과 동생이 죽어 자신이 형제들의 죽음을 토대로 대학을 나오고 혜택을 받았다는 의식을 갖게 된다. 닉슨은 가문좋고 학벌좋은 케네디에 대한 열등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케네디와의 대선에서 패배하고 케네디처럼 국민들의 사랑을 받지 못하자 『사람들은 나의 외모와 나의 학벌을 미워한다』고 외친다.
영화 『닉슨』은 가난한 배경에서 성장해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가 처참한 종말로 치닫고,다시 복권되는 파란만장한 닉슨의 생애를 따라가면서 워터게이트.베트남전쟁.쿠바사태등 역사적 사건들에대한 분석을 시도한다.
이남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