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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제원의 캘리포니아 골프 <14> 올랜도 그룹과 LA파(派)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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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호 24면

박인비(20)는 예뻤다. 박세리의 카리스마도, 박지은의 화려함도 없었지만 어린 소녀라고 믿기 어려운 침착함이 돋보였다.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US여자오픈에서 최연소(19세 11개월) 우승. 10대가 우승한 건 처음이라니 뉴욕 타임스가 대서특필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2001년 미국에 건너간 박인비는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 인근에서 자랐다. 박세리를 비롯해 김미현·장정·이미나·김주연·이선화·김송희 등도 올랜도에 거처를 마련한 경우다. 그래서 ‘올랜도 그룹’은 미국에서 활약하는 한국 여자 골퍼들 가운데 최대 파벌(?)이라 할 만하다.

이에 비해 정일미·강수연·안시현·김나리 등은 ‘LA파(派)’다.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에 사는 박지은과 샌디에이고 인근에 집을 마련한 한희원도 LA파로 분류해도 무방할 듯하다. 훈련에 지치거나 무료할 때면 종종 LA 한인타운에 들러 떡볶이를 사 먹기도 한다니 말이다.

올랜도 그룹과 LA파는 친소 관계에 따라 다시 소그룹으로 나뉜다. 김주연은 고향 선배인 박세리와 친한 편이다. 틈날 때마다 함께 연습 라운드를 한다. 안시현은 미국 진출 초기 박지은의 도움을 받으면서 훈련을 함께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박세리가 김미현과 함께 연습을 하는 장면을 보기는 힘들다. 정일미와 강수연도 썩 친한 관계는 아니다. 둘 다 캘리포니아주에 거처를 마련했지만 함께 훈련을 하지는 않는다. 미국에서 활약하는 여자 골퍼들 사이에 소그룹이 생겨난 것은 무리를 지어 훈련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골프는 개인 운동이지만 혼자 훈련하는 것보다 아무래도 2~3명이 동반 라운드를 하는 게 덜 지루하다고 선수들은 입을 모은다. 이국 땅에서 필요한 정보를 주고받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그러다 보니 지역에 따라 올랜도 그룹과 LA파가 생겨났고, 이 그룹이 친소 관계에 따라 다시 분화해 ‘박세리 군단’과 ‘김미현 패밀리’가 생겨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선수들 사이에 생겨난 소그룹을 실눈을 뜨고 쳐다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가끔 ‘끼리끼리 뭉쳐 다닌다’는 비난을 듣긴 하지만 순기능이 더 크기 때문이다. ‘적어도 너에겐 지지 않겠다’라든가 ‘네가 했는데 나라고 못할쏘냐’는 식의 경쟁의식이 LPGA투어에서 한류 열풍을 일궈낸 원동력이라고 분석하는 이도 있다.

박세리와 김미현이 대표적이다. 두 선수는 팽팽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지금의 성적을 이뤄냈다. 김미현은 1977년 1월생, 박세리는 77년 9월생이다. 호적상으론 동갑이지만 학년으로 따지면 김미현이 박세리보다 1년 선배다. 그래도 자존심 강한 박세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김미현을 ‘언니’라고 부르는 데 인색했다.

그러나 서른을 넘어서면서 두 선수는 상대방을 인정하고 존중하기 시작했다. 박세리는 요즘 김미현을 ‘언니’라고 부른다. “12월 미현 언니 결혼식에서 부케를 받기로 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렇다면 ‘올랜도 그룹’과 ‘LA파’가 맞붙으면 누가 더 셀까. 올해는 두 명의 챔피언(이선화 ·박인비)를 배출한 올랜도가 서부의 LA를 압도하는 양상이다. 그렇지만 골프 팬 입장에서 보면 올랜도가 됐건 LA파가 됐건 무슨 상관이 있을까. 한국 선수들이 우승만 많이 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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