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사우나-자연으로 돌아가 '알몸문화' 즐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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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독일어에 FKK라는 말이 있다.Frei Koerper Kultur의 약자로 직역하자면 「자유로운 신체 문화」라는 뜻이다.
이는 타고난 상태 그대로 몸과 마음의 자유를 만끽한다는 것과 동의어다.
FKK라고 표시된 해수욕장이나 호수.공원등에서는 어디에서라도알몸의 아담과 이브를 만날 수 있다.베를린.뮌헨등 대도시의 호수주변이나 공원등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처럼 독일에서 FKK가 지금처럼 보편화된 것은 무엇보다 기후에서 비롯된 생리적 이유에서 출발했다.
가을에서 봄에 이르기까지 비오고 우중충한 날이 계속되다보니 한번 해만 났다 하면 모두가 나와 햇볕을 쬔다.조금이라도 햇볕을 더 쬐겠다는 이들의 공감대가 자연스레 이같은 FKK문화를 만들어 내게 된 것이다.
FKK지역을 찾는 독일인들은 온갖 인위적 가식을 옷과 함께 벗어 버리고 자연으로 돌아가 인간대 인간으로 만난다.함께 수영도 하고 대화도 나누면서 FKK나름의 독특한 문화를 창출해 내는 것이다.특별한 자연주의 운동가가 아니라도 일반 인 누구나가쉽게 갈 수 있는 사우나에도 FKK가 펼쳐지는 것을 보면 이러한 문화가 생활화된 것임을 느낄 수 있다.이른바 「혼탕 사우나」라는 것이다.
현재 독일에는 7천여개의 사우나전용시설이 있다.운용주체에 따라 자치단체의 공공용과 민간 영업용으로 구분된다.
이밖에 호텔이나 유스호스텔.학교.양로원.요양원.군부대.가정등에도 확산돼 지난 87년말 전국적으로 40만개의 사우나가 보급된 것으로 추정된다.매년 2만5천~3만개가 증가하는 추세다.시설은 사우나별로 갖가지다.우리의 형편에서 볼때 독 일의 혼탕 사우나는 문화적인 충격임에 틀림없다.
남녀 7세 부동석이라는 유교윤리에 오래 젖어 있었고 아직도 성에 대한 금기가 강한 우리시각으로 보면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일이다.그래서 독일에 사는 주재원이나 교민들은 물론 방문객까지도 누구나 한번쯤 호기심으로 가득 차 이 별천지 에 가본다.베를린에서 가장 큰 「테르멘 암 오이로파 센터」.서베를린 중심가「부서진 교회」(빌헬름황제기념교회)바로 옆 오이로파 센터에 위치한 이 사우나탕에는 6개의 실내 사우나실과 2개의 야외 사우나실이 있다.이중 3개는 러시아-로 마식 증기 사우나며 3개는건식,2개는 핀란드식이다.또 수영장과 수온 19~42도의 9개욕탕이 갖춰져 있다.이밖에 휴게실과 옥상의 일광욕장이 있고 선탠시설.체력단련실.마사지실.미용실등도 구비돼 있다.
탁구장.당구장.비디오 TV실.식당에 이르기까지 부대시설도 완벽하다.최상급 시설이다.대개 사우나실과 수영장이 같이 설치돼 있는 것이 독특하다.
수영장 사용시 업소에 따라 수영복이 필요한 곳도 있으며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수영을 즐기는 곳도 있다.
여행객들은 대부분 대형수건이나 욕의등이 없지만 걱정할 필요는없다.입구에서 필요한 물품을 빌리거나 살 수 있다.
정식으로 하자면 욕의와 대형수건 1장.소형수건 2장.슬리퍼등을 갖춰야 한다.가격은 슈타트바트 같은 공공용은 비교적 싸며 상업용은 비싼 편이다.
「테르멘 암 오이로파 센터」의 경우 1일권이 34마르크(약 2만원)이며 3시간권이 30마르크다.12세 이하의 어린이는 18마르크,폐장 3시간전에는 27마르크면 된다.
이밖에 10회 사용권을 비롯해 1년권등 특별 이용권도 판다.
그러나 입장권을 사들고 막상 들어가면 어리둥절하다.
단순히 호기심에서 온 첫 방문객들은 긴장하기도 한다.그러나 긴장할 필요는 없다.느긋한 마음으로 보통 독일인들처럼 입장하면된다. 탈의실은 남녀가 구분돼 있다.
필요한 물건들을 챙겨 내부로 들어가면 이제부터는 혼탕이다.그러나 업소에 따라서는 남.여.혼탕을 따로 운영하는 곳도 있다.
여기서부터야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다.그저 자연스럽게 행동하면 된다.옆을 힐끔힐끔 쳐다보거나 쓸데없이 웃거나 하면 바로 야만인 취급을 당한다.
이왕 사우나를 하려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따르는 것이 좋다. 안내서에 따르면 냉.온을 적절히 배합하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사우나실에 들어가기전 샤워실에서 몸을 씻고 땀을 빨리 빼려면 몸을 닦은후 따뜻한 족탕에 발을 담그고 나서 사우나실로입장한다.족탕은 한국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것이지만 이곳에서는 보편화 돼있다.
여기서는 몇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우선 땀을 나무판에 흘려서는 안된다.
대형수건으로 발을 포함한 몸 전체를 감싸야 한다.큰 소리로 떠드는 것도 금물.사우나 전후로 샤워를 한다거나 수영장에서는 주변에 방해가 되지 않게 조용히 수영을 하는등 간단한 에티켓만지키면 환영받을 수 있다.
사우나실을 나와서는 산소가 필요한 몸을 신선한 공기에 한동안노출시키고 찬물로 몸을 식힌다.다음으로 다시 발을 족탕에 담그고 몸을 데운다.급격한 냉.온욕은 피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몸을 덥히고 식히는 과정에서 혈관이 팽창했다 움츠러드는 것을반복해 탄성을 줌으로써 활력을 더하는 것이 사우나의 큰 효능중하나다. 더운공기는 정신과 근육의 긴장을 풀어주고 심장을 약간빨리뛰게 해 혈액순환을 돕는다고 한다.냉욕은 몸을 신선하게 해신경조직과 중요한 호르몬 기관에 자극을 줘 기능을 높여준다.
실제로 사우나는 독일에서 휴양과 요양 또는 치료를 목적으로 의사들이 권하는(의료보험 혜택을 받는)경우가 많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71%가 심신의 긴장을 풀고 요양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우나를 찾는다고 대답했다.신체단련을 위해서는 62%다.
여성의 경우 피부관리나 예뻐지기 위해(47%),때를 씻거나(28%) 날씬해지기 위해(12%) 찾는다고 말해 사우나방문 목적이 달랐다.건강상의 이유로 사우나를 하는 여성은 16%에 불과했다. 독일인들은 매달 7백만명 정도 (전체인구 8천만명)가사우나를 이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규칙적으로 다니는 사람은 3%정도며 20%는 비정기적으로 사우나를 찾는다.독일에는 11월부터 3월까지 해를 보기 어려운 긴 겨울이 계속된다.
겨우내 흐리거나 비오고 습도가 높은 날의 연속이다.이를 건강하게 이겨내기에는 사우나가 적격이라는 게 예찬론자들의 주장이다. 독일의 사우나에서는 휴게실이나 수영장 주변등에서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으며 조용히 쉬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하루종일 이곳에서 편한 휴식을 취하며 피로를 해소하고 생활의 리듬을 찾는 독일인이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
그러나 막상 이곳을 다녀온 한국사람들의 반응은 별 것 아니라는게 일반적이다.성적 호기심이 금기와 위반의 아슬아슬한 평행선위에서 극대화되는 것일진대 이곳에는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남녀가 함께 마치 커피숍에서 차를 마시듯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사우나를 하고 있는 모습에 저도 모르는 사이에 동화돼버리는 것이다.그런상태에서 어떻게 불온한 상상을 할수 있을까.
사실 독일 문화의 한단면을 이해하는데 혼탕 사우나를 방문해 보는 것보다 좋은 방법도 없을 것이다.
베를린=한경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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