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떴다' 헤딩라인 뉴스 앵커 이명선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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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특집입니다. 2004 여의도 말빨리그의 열기가 가열되고 있습니다. 정관용·손석희 등 각 경기 심판의 플레이볼 선언으로 시작된 이번 리그전은 2강1중의 구도로 혼전이 예상됩니다…" '개그콘서트'의 '언저리뉴스'도 아니고, 인터넷에 작자 불명으로 떠도는 유머도 아니다. 지난 7일 KBS-2TV '생방송 시사 투나잇'(월 ̄목, 오전 0시10분)을 통해 버젓이 방영된 내용이다. 바로 고정코너인 시사패러디 '헤딩라인 뉴스'의 일부다. '헤딩라인 뉴스'는 원래 지난달 초 문을 연 인터넷 블로그 사이트 미디어몹(www.mediamob.co.kr)의 간판 코너. 네티즌들의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공중파에까지(그것도 공영방송의!) 진출한 것이다. 매주 목요일만 방영하기로 했으나 역시 시청자들의 반응이 좋아 이번 주부터 매일 전파를 타게 됐다. (이 코너가 방영되기 시작한 후 프로그램 시청률이 2배 이상 올랐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가 있다.) 이 '헤딩라인 뉴스'는 이명선(27) 앵커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단아한 옷차림, 진지한 표정, 또박또박 뉴스를 읽어내려가는 낭랑한 목소리 등, 영락없는 9시 뉴스 앵커인 그가 눈 하나 깜짝 않고 "고이즈미 총리, 너 진짜 조심해야겠습니다""엘리어트의 시구처럼 4월은 누군가에게 참으로 잔인한 달이 될 것입니다. 참 고소 ̄합니다" 등의 말을 뱉어낼 때면, ㅋㅋㅋ,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는 것이다.

▶ 헤딩라인뉴스 앵커우먼 이명선씨. 사진=김성룡기자

지난 6일 서울 마포구 광흥창역 인근의 미디어몹 사무실에서 이씨를 만났다. YTN 생방송 인터뷰를 끝내고 왔다고 했다. 인터뷰를 하는 도중에도 그를 찾는 기자들로 휴대전화 벨소리가"개울가에 올챙이 한마리 꼬물꼬물 ̄♪♬"하고 연신 울려댔다. 그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길거리에서 알아보는 사람들도 많이 생겼죠? "한 번 있었어요. 얼마 전 삼겹살집에서 밥을 먹는데 넥타이부대 세 분이 다가오셔서 사인해달라고 하시더라고요. ^ ^ 고맙긴 했지만 아직 제가 그럴 정도는 아닌 것 같아 명함만 드렸어요. 아무튼 이윤철 PD, 김상훈 작가, 애니메이터 손유진.손지혜씨, 그리고 AD 이승현씨 등 우리 팀 모두가 애쓰고 있는 결과라고 생각해요. 지난번에 이승엽씨 성대모사를 멋지게 해준 손유진씨 등, 다들 1인 2역 이상 하는 재주꾼들이거든요." -아무래도 탄핵.총선 등 정치 바람 덕도 있겠죠.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반응을 얻을 줄은 몰랐어요. '적당한 편파'를 지향하는 우리 패러디 뉴스가 특히 젊은 층 공감을 얻고 있는 것 같아요. 기존 뉴스가 '날고기'를 제공한다면 우린 '양념갈비'를 만들어 주는 거잖아요. 시사코미디와 비교하기도 하는데, 쉽게 접근한다는 점은 공통적이겠지만 패러디 뉴스는 웃음 뒤에 더 긴 여운을 주고 한번 더 생각해보게 만들죠." -'헤딩라인 뉴스'제작은? "매일 아침 10시에 다 같이 모인 편집회의를 통해 소재를 선택해요. 오후에 대강의 원고가 나오면 제가 다시 직접 읽어보면서 체크를 하죠. '글'로 재밌는 것도'말'로 옮기면 맛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거든요. 요즘엔 미디어몹 사이트에 주 3회 업데이트하는 거랑 KBS방영분 때문에 거의 매일 녹화하고 있어요." -웃음을 참기 힘든 적은 없었나요? "전 정말 진지해요. 물론 원고를 체크할 때는 재밌어서 웃는 적도 있지만 일단 큐 사인이 떨어지면 전 진지하게 뉴스를 전달하는 거에요."(동그랗게 뜬 눈이 정말 진지해보였다.) -대학시절부터 앵커의 꿈을 키워왔죠? "졸업 후 방송아카데미를 다니며 사실 공중파 방송 입사에도 여러번 도전했어요. 3차까지 갔다가 떨어진 적도 많았죠. 이후 대기업 사내 방송 아나운서로 일하게 되면서 지난해부터 케이블과 모바일 방송 등을 하기 시작했어요. 지난해 말 국민일보 뉴스자키(NJ)로 온라인 토론회 '병렬아 놀아줘 ̄''근태야 근데 ̄''러포트 주한미군 사령관과 네티즌이 만난 용산 기지 습격사건' 등도 진행했고요."

▶ 헤딩라인뉴스 제작현장. 사진=김성룡 기자

-'앵무새'아나운서가 아니라 색깔있는 앵커가 되기 위한 노력은? "언론'고시' 준비할 때부터 신문 스크랩을 꾸준히 해왔어요. 9시 뉴스는 꼬박꼬박 챙겨보고 있고요. 요즘엔 이슈 위주로 신문 기사들을 보는 편이에요. 인터넷으로 관점이 서로 다른 뉴스들을 비교해 보고 있죠. 입장과 견해가 뚜렷한 신문 사설들도 참고하고 있어요." -'딴지일보'에서도 방송을 했던데. "지난해'헤딩라인 뉴스'의 전신 격인'딴지일보'의 '오버라인 뉴스' 진행자로 발탁되면서 인터넷 방송과 인연을 맺었죠. 지금 미디어몹 이승철 대표와 최내현 편집장도 당시 딴지일보에서 근무하고 계셔서 알게 된 거에요." -요즘 인기 덕분에 공중파에서 러브콜이 있지는 않나요? "그런 러브콜이 개인적으로 긍정적이긴 하지만 전처럼 공중파 방송이 전부라고 생각하진 않기 때문에…. 인터넷과 모바일이 이젠 또 하나의 대등한 매체로서 오히려 기존 언론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봐요. 지금은 인터넷 방송에 충실할 생각이에요. " -인터넷 매체의 매력은 뭔가요? "반응을 빨리 받아볼 수 있어요. 전엔 저에 대해'귀엽다'는 등의 1차적 반응이 많았는데 요즘엔 뉴스 내용에 대한 토론이 벌어지곤 해요. 그렇게 네티즌 시청자들과 같이 참여하고 제가 하나의 '주체'가 될 수 있어 좋아요. 공중파에 '손석희'라는 브랜드가 있다면 인터넷에선 이명선이란 브랜드를 떠올리도록 만들고 싶어요." -방송인 중엔 손석희씨를 존경하나봐요? "얼마 전 라디오프로그램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전화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전화를 끊고 한동안 가슴이 두근거렸을 정도에요.^ ^ 박찬숙씨도 좋아하고요. 저도 그렇게 40대, 50대가 돼도 마이크를 놓지 않고 나만의 색깔을 오래 이어가고 싶습니다." 김정수 기자 동영상=이병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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