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응씨배 세계바둑선수권] 사망진단서

○ ·이세돌 9단 ●·쿵 제 7단

제4보(55~65)=줄타기를 즐기는 사람은 타개에 능하다. 과거 조훈현 9단이 그렇고, 이세돌 9단은 한술 더 뜬다. 백△가 그럴듯한 수여서 56을 선수하고 58에 틀어막으니 근근이 사는 궁도가 나오고 있다. “참 용하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쌈지 뜬 모습이니까 칭찬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 좁은 곳에서 귀신같이 집 모양을 만들어내는 이런 솜씨는 이세돌이니까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당장에 수는 없지만 59로 잡아둔다. 칙칙할 만큼 두텁고 느릿하지만 확실하다. 꺼림칙한 뒷맛을 없애며 “살아가시오”라고 말하고 있다.

한데 이게 무슨 괴변인가. 이세돌 9단은 손을 빼고 60으로 달려가고 있다. “미쳤나?” 사방에서 비명소리가 터져나온다. 신기하게도 쿵제 역시 아무 일 없다는 듯 61로 받아주고 있다. 살아있나 보다. 그런데 이상하다. A나 B가 선수로 들어야 사는데 아무리 봐도 선수 같지 않다. 의구심으로 가득한 눈들이 화면을 주시하는데 이세돌 9단의 손이 저 멀리 62로 향했다.

순간 대마에 관심 없는 듯 보이던 쿵제가 63, 65로 와락 잡으러 왔다. 긴 정적 탓인지 59와 63의 두터움이 깜깜한 숲을 연상시킨다. 나는 새도 빠져나가지 못할 만큼 칙칙한 숲… “죽을 것 같다”는 소리가 들린다. 곧이어 “죽었다”는 최종 확인이 나왔다. ‘참고도’ 1로 연결해도 2로 씌우면 출구가 안 보인다.

박치문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