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통폐합실상은이렇다>3.강압적 暴擧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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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5공화국 출범을 예비하는 역사적 시점에서 우리 언론은 남을비판하기 앞서 스스로를 바로잡고…자기 혁신을 단행하고자 다음과같은 결의를 국민앞에 천명한다.』 80년 11월14일 오후2시35분 서울태평로 신문회관 2층 회의실.
한국신문협회는 임시총회를 열어 「건전언론 육성과 창달을 위한결의문」을 냈다.방송협회 역시 오후5시 코리아나 호텔에서 같은내용을 통과시켰다.
이같은 「자발적 결의」 형식을 거쳐 당시 TBC(동양방송)등44개 언론사가 통폐합됐다.불법성과 강압성을 숨기기위한 신군부의 얄팍한 술책이 숨어있었음은 물론이다.
신군부가 이광표(李光杓)당시 문공부장관을 앞세워 총회를 열었고 결의문건 역시 이수정(李秀正)청와대 정무비서관이 작성해 당일 두 협회에 전달했음이 이번 5.18 수사에서 드러났다.당시보안사 중앙일보.동양방송 출입요원이었던 김태진( 金泰鎭)씨의 증언. 『80년 11월12일 오후4시쯤 삼청동(보안사)으로부터연락이 왔다.사령관(盧泰愚)주재 파티가 있으니 담당 언론사주를즉시 데려오라는 것이었다.이날 오전 고 홍진기(洪璡基)회장의 행선지를 파악해 놓으라는 언론대책반장 이상재(李相宰 )씨의 지시가 있었으나 이유는 가르쳐주지 않았다.두시간뒤 洪회장과 함께보안사로 향했다.정문에 도착하자 대공처소속 한 장교가 소총을 든 사병들앞에 버티고 서서 「당신(金씨)만 내리라」고 명령했다.그래서 洪회장을 태운 승용차만 안으로 들어갔다.이것이 TBC의 장례식이 될 줄 정말 몰랐다.』 비슷한 방식으로 이날 오후6시부터 오후9시까지 언론사주들은 서울과 각 지방 보안사로 유인됐다.언론사주들은 「파티가 있다」「간담회가 있다」「사령관이 개인 면담을 하잔다」 등의 속임수로 보안사로 들어갔다.
『사령관 간담회가 있다는 보안사 요원의 말을 믿고 보안사에 갔다가 꼼짝없이 회사를 빼앗겼다.군인들이 탁자 1개.의자 2개만 있는 방으로 데려가 각서를 쓰라고 강요했다.처음에는 버텼다.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당시 정치인들도 모두 잡 아가둔 때 아니었는가.밖에선 「서빙고로 모셔」하는 소리도 들렸다.』(張基鳳 신아일보 사장) 보안사라는 권력기관이 민간인인 언론사주들을연행,경영권 포기를 강요함으로써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정면으로부정하는 불법행위가 공공연히 자행된 것이다.
〈표참조〉 법조계에서는 이러한 기본권 침해와 함께 민법상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에 따른 계약상의 불법성에 동의하고 있다.민법 102조에 「상대방 의사표시에 관해 제3자가 사기.강박을 행한 경우에 한하여 그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고 규 정돼 있기 때문이다.이와함께 민법 103조(반사회적 질서의 법률 행위),104조(불공정한 법률 행위)의 저촉여부도 거론하고있다. 결국 언론통폐합은 신군부가 적(敵)을 상대로 군사작전을펴듯 전개한 또하나의 쿠데타였던 셈이다.
이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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