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마음 너무 몰라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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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바뀌어 이혼녀의 재혼 신데렐라 이야기도 나오는 시대다. 하지만 아무리 시절이 좋아져도 변하지 않는 건 깨지는 가정에서 아이들이 받는 상처다. 부모가 이혼하면 같이 살지 못해 마음이 아프고, 자식 핑계 대며 안 갈라서고 죽일 듯 싸우는 부모 밑에서 불안해하는 아이들 역시 못지않게 불행하다. 요즘 아이들은 똑똑해 파탄 난 가정을 두고도 쿨하게 군다지만 겉으로 그런 척한다고 속마음도 병들지 않을 거라고 본다면 오산이다.

그러니 드라마나 영화에서 지나치게 쿨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그냥 어른들이 만들어 낸 환상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순수한 마음으로 어른들의 영혼을 정화하는 천사일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걸 다 이해하는 듯한 애어른 캐릭터들이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다.

종영한 MBC 드라마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에서 최진실 부부는 둘이 합의하에 이혼한 것도 아니고 갑자기 아빠가 사라지고 엄마는 새 남자친구와 연인이 되었다. 그 딸은 보통의 중학생이었다면 충분한 설명도 이해의 시간도 주지 않은 부모에 대해 혼란스러울 것이 당연하건만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적응한다. 아무리 엄마 최진실의 러브스토리 위주 드라마였다지만 그 아이의 마음 한 번 제대로 비춰 봐 주지 않은 건 야속했다.

요즘 KBS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에서 최고 악당으로 떠오른 신은경의 의붓딸 소라를 보면 너무나 딱하고 안타깝다. 이 드라마는 자식들 결혼에 속 끓는 김혜자, 마음에 안 드는 며느리 맞아 마음고생하는 장미희와 그 때문에 속이 문드러져 가는 며느리 이유리, 애 딸린 이혼남한테 시집가 사서 고생하는 신은경 등 각자 힘든 인생을 그린다.

하지만 따져 보면 어린아이 소라만큼 답답한 처지가 있을까. 어른들이야 매사가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는 셈법으로 내린 선택이고, 그렇게 결정지은 인생에 책임을 다하든지, 아니면 그것을 버리든지 하면 된다. 게다가 아무리 죽겠다 힘들어해도 각자 자기 편도 하나씩 있다.

그런데 이 가엾은 딸내미는 자기 선택에 따라 부모가 이혼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집을 나갈 수도 없는 처지다. 변호사 아빠와 엄마는 이혼을 하면서도 왜 헤어져야 하는지, 헤어진 이후에도 여전히 자기가 사랑받을 수 있는 건지 확신을 주지 않고 대충 이혼해 놓고, 아빠는 서둘러 새장가를 가고 새엄마랑 덜컥 아기까지 가졌다.

아이는 당연히 부모가 완전히 헤어진 거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기가 나서서 둘을 연결시키려 궁리를 하고, 새엄마를 미워하고 새엄마의 이른 임신에 자신의 존재를 불안해한다. 어른들은 무당기 있는 김지유의 말처럼 그저 ‘새엄마의 눈알을 파먹을’ 무시무시한 괴물로 이 아이를 몰아간다. 어떤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고 아무도 자기 편을 들어주지 않는 상황에서 이 아이가 괴물이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가?
아이들은 천사도 될 수 있고 괴물도 될 수 있다.

그 잠재력을 어느 쪽으로 키워 주는가는 전적으로 어른들의 책임이다. 제발 어른들은 소라만 탓하지 말고 아이한테 솔직하고 충분하게 불행한 상황들을 설명했는지, 그걸 받아들일 시간을 주면서 기다려 줬는지, 이해를 강요하지 않았는지 자신을 돌아볼 일이다. 바라건대 쿨하려고 노력하는 신은경이 아이를 낳고 난 뒤 진정 엄마의 입장에서 딸 소라가 천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읽어 내고 애정을 나누는 걸로 마무리되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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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정씨는 일간지 문화부 기자 출신으로 문화를 꼭꼭 씹어 쉬운 글로 풀어내는 재주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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