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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제원의 캘리포니아 골프 <13>땀 흘린 만큼 ‘멘털’은 강해진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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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호 24면

미국 캘리포니아의 골프 스쿨 PG CC는 학기마다 필기와 실기 시험을 치른다. 시험 중엔 재학생 대부분이 참가하는 골프 토너먼트도 포함돼 있다. 재학생들은 6주 동안 진행되는 이 골프 대회에 참가해 샷을 겨룬다. 일반 골프 대회처럼 성적이 나쁘면 컷 탈락이다. 대신 상위 30명 이내에 들면 학기말에 교수진과 샷 대결을 벌이는 프레지던트컵 대회에 나간다. 지난해 PGCC에서 연수 중이던 필자도 이 대회에 참가했다.

“제원 정, 프롬 코리아!”
대회 진행을 맡은 학교 관계자가 큰 소리로 필자의 이름과 국적을 소개했다. 마치 PGA투어 대회에서 아나운서가 프로골퍼를 소개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더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수많은 학생과 관계자들이 티잉 그라운드에 선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제발, 공이 앞으로만 가게 해 주소서’.

그 다음엔 어떻게 라운드를 했는지 모르겠다. 간신히 공을 페어웨이에 떨어뜨렸지만 1번 홀부터 3퍼팅을 했던 기억이 뚜렷하다.

퍼팅을 할 때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숨이 가빠왔다. 1m가 채 안 되는 짧은 거리의 퍼팅을 앞두면 반드시 넣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그럴 때마다 공은 홀을 빗나갔다. 함께 라운드하던 미국인 클래스메이트는 필자의 실수가 나올 때마다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신경을 건드렸다. 결국 그날 필자는 평소보다 15타 이상 불어난 스코어카드를 제출한 뒤 쓰린 가슴을 달래야 했다.

지난주 미국 여자골프 웨그먼스 LPGA대회에서 역전 우승을 거둔 지은희(22)는 그동안 ‘멘털이 약하다’는 지적을 받았던 대표적인 선수다(‘멘털’의 정확한 표현은 ‘멘털리티(mentality)’다). 대회 초반 선두에 나서고도 막판 고비를 넘기지 못해 우승컵을 내주곤 했다. 짧은 거리의 퍼팅을 어이없게 놓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랬던 그가 키가 머리 하나는 더 큰 스웨덴의 수잔 페테르센을 상대로 역전승을 거뒀다니 대견하다. 페테르센의 말을 빌리면 “불독처럼 물고 늘어졌다”니 지은희가 달라지긴 달라진 모양이다.

결정적인 순간 1m 내외의 퍼팅을 앞둔 그 중압감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주말 골퍼들끼리 적은 돈을 걸고 내기 골프를 할 때도 그런데 1타에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이 왔다갔다하는 공식 대회라면 어떻겠는가.

그렇지만 멘털이 유독 강한 선수도 적지 않다. 타이거 우즈, 최경주와 박세리가 대표적이다. 바둑이라면 ‘돌부처’란 별명을 갖고 있는 프로기사 이창호가 그럴 게다. 이들의 공통점은 한 번 잡은 기회는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정적인 고비에선 반드시 승기를 틀어쥐는 것이다.

멘털을 강화하는 비결은 따로 없다. 그러나 ‘땀’의 양에 비례해 ‘멘털’이 강해지는 건 틀림없다. 베테랑 골퍼 최상호(53)의 말을 빌리면 “골프는 인내심의 다른 이름”이다. 참을성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하면 멘털은 저절로 강해진다는 뜻일 게다. 미국의 스포츠 심리학자 밥 로텔라는 『골프, 자신감의 게임』이란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자신감은 파와 보기, 원 퍼팅과 3퍼팅, 승리와 패배를 결정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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