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두리의 ㅋㅋㅋ <8> ‘스페인은 완벽한 팀’ 동의하지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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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니아!!!!(스페인의 독일 발음)

돌풍의 러시아 대신 무패의 스페인이 결승에 올랐다. 이번 대회에서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준 스페인. 어제 스페인의 경기를 보고 독일은 불안감에 술렁이고 있다. 과연 저런 팀을 이길 수 있을는지….

터키를 상대로 쩔쩔매던 독일팀의 졸전을 보다가 어젯밤 스페인의 신선한 공격 축구를 본 독일 팬들의 입맛은 씁쓸하다. 베켄바워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그의 말이 곧 법이기도 한 제1TV 해설가 귄터 네처는 “러시아를 상대로 한 스페인의 한판은 전 세계 축구팬들의 마음을 열어주는 경기였다”고 극찬했다. 또 고급 축구가 무엇인지를 보여줬다며 부러워했다. 스페인은 수많은 스타 플레이어가 있었지만 내가 축구를 보기 시작한 이후 지금 바로 이 팀이 가장 완벽한 것 같다. 중얼거릴 상대도 없이 칩스를 주워 먹으면서 혼자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한국의 아버지한테서 문자가 왔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완벽한 팀이다’고. 그렇다니까요 아버지!!!! 우린 부자지간이 확실하다.

그러나 여기서 잠깐 스톱을 걸어야겠다. 그럼 과연 독일은 정말 찬스가 없는 걸까? 나는 어제 경기가 끝나고 아버지의 문자에 이런 답을 보냈다. “아빠 러시아보다는 스페인이 더 나아요. 상대하기가.” (물론 아버지와 나의 우리 팀은 독일이다)

얼핏 듣기에는 이상하게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독일은 자신들이 우세하다고 평가되는 상대보다는 상대가 더 우위라고 평가되던 경기에서 훨씬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터키전이 끝나고 독일 언론이나 팬들은 대표팀을 향해 할 수 있는 조롱과 욕은 모두 해댔다. 그러나 결승전 상대가 결정되자 이제는 그만해야 된다는 분위기가 슬슬 돌기 시작한다. 네덜란드·포르투갈, 그리고 히딩크의 마법이라고 불리던 러시아, 모두 고급 축구를 보여주는 팀들이었다. 그러나 독일은 첫 경기를 빼고는 투박하고 둔한, 마치 날렵한 세단 사이에 끼어든 디젤차처럼 촌스러웠다. 힘만 센 구닥다리 전차 같기도 했다. 그런데 폼 나는 팀들을 뒤로 하고 독일이 결국 결승에 올랐다. 실제로 스페인 감독도 독일을 보고 가장 무서운 것이 발라크나 폴디(포돌스키) 같은 선수가 아니라 토너먼트에서 끈끈한 힘을 보여주는 바로 팀 전체라고 했다.

나는 2006년 월드컵을 기억한다. 나는 아르헨티나와 세르비아의 경기를 중계했다. 최고의 팀으로 꼽히던 아르헨티나는 내내 환상의 축구를 보여줬다. 그때 나는 ‘오락기 축구’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을 못 찾아 TV에서 그냥 그렇게 말해 버렸다. 2006 월드컵 최고의 팀. 그러나 결국 이 팀도 독일의 끈끈한 뚝심에 막혀 탈락하고 말았다.

이번 결승은 정말 너무나 색깔이 다른 두 팀이 맞붙는다. 기술이 뛰어난 스타 플레이어를 앞세워 환상 축구를 보여준 스페인과 90분 내내 경기력과 상관없이 오직 이기겠다는 집념만으로 뛰는 독일팀.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지….

나 개인적으로는 당연히 독일이 이기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팬에게 너무나 좋은 축구를 보여준 스페인도 충분히 우승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냥 멋진 경기를 보여줬으면 좋겠다. 아버지가 늘 말하시는 것처럼. ‘축구를 사랑해 주시는 팬들을 위해서!!!!

차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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