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환자의 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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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해초 미국에선 있을 수 없는 의료사고가 연이어 발생했다.
열흘 간격으로 두건이 발생한 곳은 플로리다주 템파시의 유니버시티 커뮤니티 병원.당뇨병을 앓아 오른쪽 다리를 절단해야 하는 어느 50대 환자는 마취에서 깨어나 보니 멀쩡한 왼쪽 다리가 절단돼 있는 것을 발견하고 아연실색했다.담당의사의 순간적인 착각이었고 이 환자는 결국 오른쪽 다리까지 절단해야 했다.열흘 뒤에는 이 병원의 호흡기전문 물리치료사가 환자를 오인해 애꿎은70대 노인의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는 바람에 환자를 숨지게 한 불상사가 발생했다.비슷한 시기 미시간주의 한 외과병원에서는 의사가 유방암 환자의 유방을 수술한답시고 멀쩡한 유방을 도려내는실수를 저질렀다.
병원과 환자의 합의에 따라 덮어지는 경우가 많아 그렇지 이런종류의 의료사고는 전세계적으로 수없이 발생한다.미국의 경우 병원이나 의사의 부주의로 인한 의료사고로 목숨을 잃는 환자는 해마다 1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그래도 미국의학협회(AMA)는『전체 의료행위중 99%는 안전하다』는 점만 강조한다.
의료사고에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서너해 전엔 미국의 정신과의사들중 상당수가 환자들과 성관계를 갖는 것으로 밝혀져 물의를 빚었고,환자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자살을 도와주는 의사가 화제의 주인공이 되는가 하면, 불임(不姙)을 치료하던 의사가 환자의 난자(卵子)를 빼돌려 다른 불임부부의 임신에 사용한 사실이 밝혀져 피소되기도 했다.
이런 사례들은 모두 병원이나 의사의 이기주의에서 비롯한다.의성(醫聖)히포크라테스의 「의사 선언」에 『어떤 환자는 비록 자신의 상태가 위험하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을지라도 단순히 의사의친절에 대한 만족감으로 건강을 회복하기도 한다』 는 대목이 있다.그것이 바로 동양의학에서 말하는 인술(仁術)의 정신이다.그래서 인술을 요구하는 것은 환자의 당연한 권리일 수도 있다.
『수술.진료로 인한 어떤 후유증이나 합병증에도 병원에 책임을묻지 않는다』는 종래의 동의서도 병원.의사의 이기주의와 환자의권리 포기를 의미한다.「환자의 권리」를 보완한 병원협회의 「표준약관」을 공정거래위가 승인한 것은 당연하다.
병원 문턱이 훨씬 낮아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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