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안치용 사이클링 히트 ‘내 생애 최고의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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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이 5회 초 3점 홈런을 치고 홈인하면서 동료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대구=연합뉴스]

LG 좌타자 안치용(29)에겐 ‘생애 최고의 날’이었다. 생애 첫 사이클링 히트를 터뜨리며 팀을 9연패의 늪에서 구해냈기 때문이다.

안치용은 26일 대구 삼성전에서 3점 홈런 포함, 단타-2루타-3루타를 차례로 터뜨리며 프로야구 통산 13번째 사이클링 히트의 주인공이 됐다. 2004년 9월 21일 신종길(한화)이 대전 두산전에서 기록한 이후 3년9개월5일 만에 나온 값진 기록이다.

3번 타자로 나온 안치용은 1회 좌전 안타에 이어 3회에는 중월 2루타, 5회에는 좌월 스리런포를 터뜨렸다. 사이클링 히트가 어려운 것은 1, 2루타와 홈런을 치고도 3루타가 모자라기 때문.

그러나 기대했던 상황은 6회 일어났다. 선두 타자로 나선 그는 좌중간을 가른 뒤 담장 근처까지 가는 호쾌한 안타를 삼성 구원 투수 권오원으로부터 뽑아냈고, 야수들이 주저하는 사이 3루까지 내달렸다.

안치용은 2군 시절에도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한 경력을 갖고 있다. 2003년 4월 15일 LG 구리구장에서 열린 상무와의 경기에서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한 바 있다. 안치용은 26일 경기를 마친 뒤 “그때도 6타수 4안타 5타점이었다. 오늘과 기록이 똑같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신일고 4번-연세대 4번을 거쳐 2002년 LG에 입단한 그는 ‘게으른 천재’였다. 2군은 잠시 거쳐가는 코스인 줄 알았지만 붙박이 1군이 되기까지는 6년이 넘게 걸렸다. 입단 후 감독은 네 명이나 거쳐갔지만(김성근→이광환→이순철→김재박) 그는 항상 제자리였다. “2군에서 나는 ‘성골’ 이라고 생각했다. 유망주였으니까 당연히 특별 대우를 받아야 된다고 여겼다. 김성근 감독이 부임해 내 스타일과는 다르게 훈련을 시켰다. 야구가 싫었고, 내 맘대로 하면 되는 줄 알았다.”

늦게 들어온 신인들은 모두 1군 등록일수가 많아지거나 아예 구리구장(LG 2군 캠프)에 내려오지 않았다. 안치용이 절실히 야구를 하고 싶었던 때는 지난해 봄. “2군 경기를 치를 때였다. 다른 때와 똑같이 그냥 배트를 들고 나섰다. 그러다 우연히 2군 경기 출전 명단을 봤는데 주전 외에 30명이 더 있더라. 그리고 내가 나이가 제일 많더라. 충격이었다. 일단 30명을 제치고 야구를 ‘먼저’ 해야 했다.”

지난해 겨울 호주 마무리 캠프. 김재박 감독이 그를 불렀다. “죽을 각오로 하라. 죽겠다는 각오로 덤벼 봐라.” 말수 적은 김 감독이 따로 불러 말을 했을 때는 뭔가 이유가 있었다. 야구 하겠다는 의지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그때부터 운동량이 늘어났다. 2군 경기가 끝나면 잠실에 가서 1군 경기를 지켜봤다. 내가 저 타석에 들어서면 어떻게 할까, 저 상황에서 어떤 수비를 해야 하나 머릿속에 그렸다. 구리구장의 비닐하우스 훈련장에서 배트를 드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안치용은 매년 팀의 방출 대상 리스트에 포함돼 있던 선수다. 야구를 접을 뻔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그는 김재박 감독의 말에 배트를 ‘제대로’ 쥐기 시작했다. 그리고 9연패에 빠진 김재박 감독과 LG를 살려냈다. ‘죽을 각오로 야구 하라’는 감독의 말을 가슴에 담고 ‘죽을 뻔한’ LG를 위기에서 구해낸 것이다.  

대구=김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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