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논술고사 論題 어렵고 까다로울 필요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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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올해 대학입시 논술고사는 수험생의 창의적인 사고를 요구하는 문제가 주류를 이루었다는 평을 받았다.상식적이고 고정관념에 얽매인 시각으로는 접근하기 어려운 내용을 주제로 설정하거나,시사성이 강한 제재를 제시하고 그에 대한 수험생의 논 리적 식견을묻는 유형이 대부분이었다.장기적으로 보았을 때는 바람직한 방향일 수도 있다.하지만 일부 대학의 논제는 철학적.이론적 배경이취약한 고등학생들이 답을 쓰기에 너무 버거웠다.문제를 훑어본 교사들 조차도 내용이 너무 어렵고 논점 파악이 힘들다고 고개를설레설레 흔들 정도였다.
변별력을 높이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수능에서 비슷한 점수를 받은 학생들의 논술고사 점수가 50점까지 벌어진다는 것은 오히려 논술고사의 객관성과 신뢰도에 손상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특히 고려대와 서강대의 문제는 그동안 대학 자체에서 실시했던 실험평가의 유형과는 너무나 상이하게 출제돼 고교 교사및 수험생들을 당혹스럽게 했다. 또다른 예를 들자면 「선진국 진입이란 문턱에 서 있는 우리 한국은 진정으로 세계 일등국이 될수 있는 것인가,아니면 불가능할 것인가」라는 논제는 비판적 의식이 상대적으로 약한 수험생들에게 긍정적 관점의 서술을 유도해 결과적으로 논제 자체가폐쇄적이 됐다는 인상을 준다.
일선 고교에서는 과거 출제된 문제나 대학의 실험평가에 맞추어논술지도를 하는 게 일반적임을 감안할 때 이같은 출제경향은 논술지도를 더욱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논술의 주제가 지나치게 개념적.추상적인 쪽으로 기울어져 있거나,논점이 불명확하고 수험생의 사고를 특정한 쪽으로 유도하거나필요 이상으로 현학적인 것은 지양돼야 한다.
현행 교과과정 안에서 진행되는 학교수업과 수능시험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있는 학생들에게 논술고사를 위한 또다른 공부(그것도 대학생 수준 이상의 어려운 내용)가 별도로 필요하다면 이는너무 가혹한 일이다.논술의 논제가 반드시 어렵고 까다로워야 할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교과영역의 범위나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지식의범주 안에서도 학생들의 독창적인 사고,논리적인 사유,문장의 감수성 등은 얼마든지 확인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영일고 국어교사〉 윤영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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