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배명복 시시각각

안심하고 설렁탕 먹게 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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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점심 메뉴가 고민스러울 때마다 나는 회사 근처 설렁탕집을 찾곤 한다. 뿌연 고기 국물에 먹음직스럽게 푹 삶은 쇠고기가 국수사리와 듬뿍 썰어 넣은 대파와 조화를 이룬 맛이 일품이다. 동료들과 어울려 갈 때면 쇠고기 수육을 안주 삼아 소주 한두 잔을 곁들이기도 한다.

굳이 의식한 게 아닌데도 요즘 들어 설렁탕집을 찾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갔었는데 언제부턴가 발길이 좀 뜸해졌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일까. 그 집에 가자는 동료들도 줄었다. 며칠 전 모처럼 갔더니 분위기가 전 같지 않았다. 점심때면 으레 자리 다툼을 벌일 정도로 붐비던 집이 왠지 한산해 보였다. 이 쇠고기가 국산일까 호주산일까 궁금해진 것도 처음이었다. 전에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미국에서 인간광우병에 걸려 죽은 사람은 현재까지 한 명도 없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인간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로또에 당첨되고 바로 벼락에 맞아 죽을 확률과 같다는 말이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왜 설렁탕집 손님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일까. 더구나 미국산 쇠고기는 아직 국내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합리적인 것 같지만 합리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합리의 잣대로 광우병 위험을 따지자면 한국은 할 말이 없는 나라다. 미국은 동물 검역에 관한 국제기준을 정하는 국제수역사무국(OIE)으로부터 광우병위험통제국 지위를 획득했지만 한국은 아니다. 정확한 광우병 실태 파악조차 안 되고 있다. 국제적으로 안전성을 인정받은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막겠다고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온 한국인들이 미국인들 눈에는 비합리적으로 비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우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과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요구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미국산 쇠고기를 사는 쪽은 우리다. 당연히 최대한 안전성을 따져 수입조건을 엄격하게 하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다. 그래서 정부는 결국 여론에 밀려 미국과 추가협상을 했고, 30개월 미만짜리 쇠고기만 들여오는 것으로 했다. 민간업계의 자율결의를 미 정부가 품질체계평가(QSA) 프로그램을 통해 관리하는 방식이지만 실효성 논란은 가시지 않고 있다.

논란을 해소하는 방법은 사실 간단하다. 미 도축업체가 광우병 검사를 마친 소만 시중에 유통시키는 것이다. 미국은 1000마리당 한 마리만 광우병 검사를 하고 있다. 이것도 OIE 권고 기준보다는 훨씬 많다는 것이 미국 측 주장이지만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는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유럽연합(EU)은 30개월 이상 된 소는 도축 전 모두 광우병 검사를 하고 있다. 특히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페인은 24개월 이상 된 소는 다 검사한다. 일본은 월령에 관계 없이 전수검사를 하고 있다.

미 정부는 민간업자가 자체적으로 광우병 검사를 하는 것까지 못하게 막고 있다. 캔자스주 크릭스톤사(社)는 자체 검사를 금지하는 미 농무부를 상대로 소송을 벌여 1심에서 승소했지만 농무부의 항소로 재판이 진행 중이다. 마리당 20달러의 비용만 들이면 간단히 광우병 감염 여부를 판별할 수 있는데도 미 정부는 한 업체가 하면 모든 업체가 해야 하고, 이는 쇠고기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이유로 막고 있다. 미 소비자의 95%는 값을 10% 더 내더라도 광우병 검사를 받은 쇠고기를 구매할 의사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미 소비자연맹의 선임 과학자인 마이클 한센 박사는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미 농무부의 이런 조치야말로 ‘미친짓(madness)’이라고 성토했다.

새로운 미국산 쇠고기 검역조건이 오늘 관보를 통해 고시된다. 미국산 쇠고기 유통이 본격 재개되는 것이다. 내가 즐겨 찾는 설렁탕집도 언젠가는 미국산 쇠고기를 쓰게 될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좋아하는 설렁탕을 안 먹을 순 없는 노릇이다. ‘광우병 검사필’ 라벨이 붙은 재료를 쓴다면야 기꺼이 돈을 더 내고라도 먹을 용의가 있지만 말이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