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경찰과 심리학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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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경찰과 한 범죄심리학자,그리고 개구리 소년 아버지가 연출했던암매장 발굴작업은 한 겨울밤의 해프닝으로 끝났다.이 해프닝을 보면서 한 심리학자에게 놀아난 경찰은 무엇인지,심리학자의 신통력에 긴가민가 했던 우리들은 무엇인지,아이를 잃 고도 흉악한 범인으로 몰려야 했던 아버지의 인권은 누가 헤아려나 줄 것인지등등으로 착잡한 심정이다.
이 작은 사건에서 경찰이라는 공신력있는 기관이 제 역할과 제기능을 제대로 못하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일어날 수 있음을우리는 본다.지난 5년간 경찰도 개구리 소년을 찾기 위해 나름대로 열과 성을 다했다지만 하나도 아닌 다섯 아이들이 사라졌는데 이토록 오리무중인가 하는 질책은 그대로 남는다.이러니 경찰은 이 제보,저 첩보에 휩쓸려 줏대없이 왔다갔다 했다.범죄심리학자의 주장 또한 한 과학자의 의견으로 참고할 수는 있을 것이다.그렇더라도 경찰은 그 주장이 옳은지 그른지 면밀히 조사하고따져봐야 했다.믿을만한 주장이라 판단했다면 경찰 주도로 발굴작업을 벌여야 했고,근거없는 심증에 불과했다면 무시했어야 옳았다. 그러나 경찰은 「면피」에만 급급해 아무런 확인작업도 없이 집을 허물어도 좋다는 각서를 피해자로부터 받아내 작업을 벌였다.경찰 또한 심리학자의 주장에 행여나 하는 마음이 쏠린 것은 아닐까.공권력의 상징이어야 할 경찰 스스로 과학적 수사에 자신이 없으니 꽁무니 빼고 한 심리학자의 심증에 끌려다닌 결과가 아닌가. 마녀사냥이란게 별게 아니다.개구리 소년의 아버지가 수상하다고 한사람이 손가락질 하고 두사람이 동조하면 마을 전체가마녀로 몰아가는 게 분별없는 사회의 여론조작 방식이다.우리 모두 긴가민가 하면서 심리학자의 심증에 귀기울인 것 또한 분별없는 미신에 놀아나는 무속적(巫俗的)세태를 반영한다.
분별있는 경찰이라면 한 학자의 주장에 끌려다니지도 않았을 것이고,분별있는 사회라면 남의 인권과 심정을 무자비하게 짓밟는 짓을 이토록 태연히 저지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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