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음하는中企현장>2.돈구하기 더 어렵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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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서울 구로공단 중소기업인 이례금속 박종선(47)사장은 15일월급날이 다가오면서 또 돈걱정이다.4년째 스테인리스 관이음새 부품업을 해 왔지만 요즘같은 때가 없었다.월급을 주려면 당장 4,000만원 안팎의 「현금」이 필요하다.그러나 현금보다 언제부도날지 모르는 어음이 더 많아 고민이다.
그렇다고 어음으로 월급을 줄 수도 없고 할 수 없이 또 월 4푼 이자를 떼고 사채시장에서 어음을 할인해야 할 판이다.
그나마 사채시장도 예전같지 않다.전에는 이곳에서 급전(急錢)을 마련할수 있었지만 지금은 쉽지 않다.금융실명제이후 사채시장이 급격하게 위축된 때문.
「숨은」사채꾼을 가까스로 찾아 어음할인을 하면 이자는 월 4푼,연 48%의 엄청난 고리다.
물론 팔자좋은 중소기업들도 있다.몇몇 간판급 대기업들은 물품대금으로 즉시 현금을 준다.못해도 3개월짜리 어음이다.그러나 이런 혜택을 받는 대기업 협력업체로 불리는 중소기업은 극소수다.대부분이 언제 부도날지 몰라 가슴을 졸이면서 장 기어음만 잔뜩 손에 들고 한숨을 쉬기 일쑤다.『요즘같아선 하청을 하는 조그만 건설회사 어음은 휴지조각이 될지 모른다는 각오를 해야죠.
』건설자재 중소기업인 시화공단 S사 사장의 하소연이다.
중소기업사장인 L씨는 최근 중기 자금지원을 확대한다는 얘기를듣고 「혹시나」하는 심정으로 한 은행창구를 두드렸다.그러나 『적금부터 하나 들라』는 창구직원의 말에 그만 발길을 돌렸다.달라진게 없었다는 것만 확인한 셈이다.「현금」에 굶주리는 중소기업들.은행마다 『돈이 남아돈다』며 돈 줄 곳을 찾아 아우성인데중소기업 돈 기근은 갈수록 더하다.
『각종 자금지원책이 신문에 쏟아져 나올 때 실제 은행에 가보세요.돈을 쓰라는건지 말라는 것인지….기준이 까다롭고 문턱도 높아요.』일선 중소기업사장들의 뼈아픈 지적이다.그러나 돈 빌려주는 은행측 사정은 다르다.
『은행은 땅 파먹고 삽니까.담보없고 거래한 적도 없는데 무엇을 믿고 돈을 빌려줍니까.』돈 꿔줬다 부도나면 누가 당하느냐는은행관계자들의 반문에도 일리는 있다.사실 돈 푼다고 중소기업 부도사태가 당장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임시 수명연장 용 「캠퍼주사」에 불과한데 근본대책없이 중소기업이라고 돈만 주었다간 되레 은행의 부실화는 불보듯 뻔하다.문제는 중소기업에 갈만한 돈이 제대로 안가는 데 있다.여기에 문제해결의 열쇠가 있다.
성태원,김광수,고윤희,임봉수,박경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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