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릴러 영화가 코믹연극 변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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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영화의 수 많은 장면을 무대 하나에서 구현해 낸 연극 ‘39계단’은 2007년 영국 올리비에 어워즈 ‘베스트 뉴 코미디’를 수상했고, 올해 미국 토니상에선 음향·조명 2개 부문을 수상했다. [에이콤 제공]

4명의 출연진이 각자 의자에 걸터앉아 대화를 나눈다. 갑자기 모두 앞쪽으로 동시에 방향을 튼다. 그리곤 자동차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럴싸하다. 그뿐인가. 나무 상자로 띄엄띄엄 연결한 세트는 어느새 기차로 탈바꿈한다. 목숨을 건 탈출 장면이 꽤 생생하다. 배우가 검은 색 망토를 쓴 채 늪이 되었다간 또다시 바위라고 우기는, 기괴한 작품. 바로 연극 ‘39계단’이다.

‘39계단’은 현재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를 강타하고 있는 작품이다. 2006년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초연됐고, 올 초 뉴욕으로 건너온 후 연일 매진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이번 토니상에서 음향상과 조명상을 받아 더욱 탄력을 받게 됐다. 지난주 ‘39계단’이 공연되고 있는 브로드웨이 코트 시어터 1000여석의 객석은 단 하나의 빈자리도 없을 만큼 빽빽했다. 원작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39계단’. 당연히 살인과 피가 흥건하고, 음습함과 예측불허의 긴박함이 넘칠 것이라 지레짐작하겠지만, 천만의 말씀. 쉴 새 없이 웃음을 유발시키는 코드로 가득하다. 스릴러물을 코믹물로 탈바꿈시키는 반전 앞에 관객의 반응은 더욱 뜨거웠다.

무대에 오르는 배우는 단 4명이지만 과연 몇 명의 인물 혹은 몇 개의 사물이 등장하는지는 셀 수가 없을 정도였다. 주인공 해니역만이 한 인물로 고정될 뿐이었다. 특히 남자1·2를 맡은 두 명의 배우는 그야말로 천의 얼굴로 변신의 변신을 거듭했다. 무대 밖으로 사라진 지 10초 안에 남자가 여자로 바뀌고, 여관집 주인이 수사관으로 행색을 달리하는 건 그래도 얌전한 편. 뻔히 무대 위에 있으면서 모자를 갈아끼는 것 하나만으로 경찰관-신문팔이-외판원을 후다닥 넘나드는 대목에선 관객마저 눈이 휘둥그레 돌아갈 정도였다. 제작사측은 “바뀌는 역을 몽땅 합치면 100분간 150가지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러나 이는 연출의 의도에 따라 더 늘어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한 ‘개그콘서트’의 몸개그처럼 우스꽝스런 동작과 과장된 억양·발음 역시 관객들을 즐겁게 했다. 엉성한 창문틀이나 문짝 하나로 안과 밖을 구별하는 것은 물론, 새로운 상상의 공간을 툭하면 만들어냈다. 이 모든 게 오차범위 0%의 컴퓨터 프로그래밍처럼 착착 맞아떨어지는 게 더 놀라울 따름이었다. 뉴욕 타임스가 “실력 있는 요리사만이 완벽한 수플레(달걀의 흰자 위에 우유를 섞어 거품 내어 구운 요리로, 보들보들하게 굽기 힘든 디저트류로 유명함)를 만들어 낸다”라고 표현한 건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이 작품은 곧 국내에서도 올라간다. 과연 한국 배우들도 절묘한 타이밍과 맛깔스런 언어를 100% 살릴 수 있을지. 한국적 변신은 서울 대학로 동숭홀에서 확인할 수 있다. 8월17일부터. 02-2250-5900 

뉴욕=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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