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장미'를 보셨나요…세계적 난제 'Blue Rose' 개발 서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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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파란 장미(Blue Rose). 영한사전을 찾아보면 '있을 수 없는 것'이란 뜻이 적혀 있다. 실제 파란 장미는 생명공학자들에게 이루지 못한 꿈으로 남아 있다.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유전공학적인 기법으로 파란 장미를 만들어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장미는 원래 파란색을 만들어내는 유전자가 없어 현실세계에서 자연적으로 존재하지도 않는다. 여러 학자들이 인위적으로 파란색에 관련된 유전자를 집어넣어 보기도 했지만 매번 고비를 넘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파란 장미를 만들어내기 위한 시도는 계속 되고 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유장열 박사는 파란 장미 개발에 8년째 매달려 왔다. 1996년부터 2000년까지 파란 장미 개발과제를 받았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 유박사는 "일찌감치 접붙이기와 같은 육종방법으로는 해결하기 힘들 것으로 예상됐다"며 "여러 가지 종류의 파란 유전자를 집어넣어 봤지만 잡힐 듯하면서도 손에 넣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파란 장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유박사는 이후 사비를 털어 연구를 해오고 있다. 식물세포의 세포벽을 녹인 원형질체에 유전자를 집어넣어 재생시키는 시스템을 확립시켜 놓았기 때문에 유전자와 아이디어만 있으면 일사천리로 진행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일단 유박사는 피튜니아의 파란색 유전자를 수입해 집어넣어 보기도 하고, 도라지에서 추출한 파란색 유전자로 장미의 형질을 전환시켜 보았다. 그러나 장미는 날카로운 가시처럼 '앙탈'을 부렸다. 하얀 장미에 파란 유전자를 집어 넣었더니 꽃잎의 끝단에서만 약간의 파란 점을 보인 것이 전부였다. 이 같은 방법으로 파란색 카네이션은 쉽게 얻어냈지만 유독 파란 장미는 그렇지 못했다.

문제는 장미의 액포에 있었다. 세포 내 소기관인 액포에 주로 색소가 모여 꽃의 색깔을 결정짓는데, 장미의 액포는 산성을 띤다는 점이 걸림돌이었다. 파란색을 내는 색소는 알칼리성에서만 파란색을 띠고 산성에서는 색을 내지 않는 것이 이유였다. 카네이션의 액포 또한 알칼리성이다.

갖가지 실험 끝에 유박사는 최근 희망의 단서를 잡았다. 유박사는 "경쟁이 치열해 지금은 비결을 말할 수 없지만 앞으로 6개월 안에 파란 장미를 선보일 수 있는 단서를 찾아냈다"고 말했다.

86년부터 파란 장미 개발에 매달려온 호주의 플로리진사가 강력한 경쟁 상대다. 피튜니아의 '파란 유전자'에 관한 특허도 플로리진이 갖고 있다. 96년에는 세계 최초의 판매용 유전자 변형 꽃인 엷은 자주빛의 카네이션을 만들어낸 버거운 상대다. 플로리진은 파란 장미가 하나의 유전자를 집어넣어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판단 아래 액포의 산도를 조절하는 해결책을 모색 중이다.

98년에는 미 테네시주 반더빌트 의대의 생화학자들이 약간의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 연구팀은 오래된 파란 염료인 인디고를 만들어내는 박테리아의 유전자를 이용했다. 그러나 파란색은 꽃봉오리가 아닌 줄기에서 약간의 반점으로 나타났을 뿐이다.

파란 장미에 대한 냉소적 의견도 만만치 않다.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 주립대의 식물유전학자 마틴 크리스필스 박사는 "유전자 변형 방법으로는 한송이에 12달러는 받아야 할 것"이라며 "적어도 1달러 수준으로 단가를 낮춰야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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