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로이” 히딩크의 ‘러시아 혁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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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거스 히딩크(62) 감독이 자신의 조국 네덜란드마저 침몰시켰다. 조별 예선에서 이탈리아·프랑스를 연거푸 3점차(이탈리아전 3-0, 프랑스전 4-1)로 완파했던 네덜란드. 하지만 ‘히딩크 마법’ 앞에서는 무기력했다.

히딩크가 이끄는 러시아가 22일(한국시간) 스위스 바젤 야코프 파크에서 열린 유로 2008 8강전에서 네덜란드를 3-1로 꺾고 준결승에 진출했다. 조별 리그 3차전에서 ‘북유럽의 강호’ 스웨덴을 농락한 러시아는 우승후보 네덜란드마저 집으로 돌려보내는 뒷심을 발휘했다. 히딩크의 조련을 받은 러시아는 그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 축구의 ‘블루칩’으로 바뀌어 있었다.

◇강한 체력으로 상대 압도=러시아는 스웨덴과 조별 리그 최종전을 치르고 불과 이틀 만에 8강전에 나섰다. 초반 2연승으로 일찌감치 8강 진출을 확정 지은 네덜란드는 루마니아와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 때 주전들을 대거 벤치에서 쉬게 했다. 체력 비축을 위해서였다.

결과는 예상을 빗나갔다. 체력 면에서 러시아가 네덜란드를 압도했다. 러시아 선수들은 후반으로 갈수록 살아났다.

반면 네덜란드 선수들은 움직임이 둔해졌다. 후반 중반 이후 경기 주도권은 러시아 쪽으로 넘어갔다. 결국 러시아는 연장 후반 두 골을 터뜨리며 승리를 거머쥐었다.

마르코 판바스턴 네덜란드 감독은 “우리가 체력에서 앞서야 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렇지 못했다”며 고개를 떨궜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팀을 맡았던 2002년에도 강력한 ‘파워 트레이닝’으로 ‘4강 기적’의 초석을 놓았다. 호주 사령탑이던 2006년 월드컵 때도 마찬가지였다. ‘히딩크 마법’의 비밀은 체력이었다.

◇앞선 상황에서 되레 공세=히딩크 감독은 네덜란드전을 앞두고 “물러선다면 더 두려워질 수밖에 없다”며 공격 지향적인 네덜란드에 “공격으로 맞불을 놓겠다”고 선언했다. 허풍이 아니었다. 히딩크는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축구의 격언을 실천에 옮겼다.

후반 11분 파블류첸코가 선제골을 넣은 후에도 공격 성향이 강한 빌랴레트디노프, 토르빈스키 등을 잇따라 투입했다. 교체로 들어간 토로빈스키는 결승골을 뽑아냈다. 연장 후반 2-1로 앞선 뒤에도 공격수 파블류첸코를 뺀 자리에 또다시 공격수 시초프를 투입했다. 수비수를 넣어서 지키는 상식을 깨버린 히딩크의 선택은 옳았다. 시초프를 투입한 지 1분 만에 아르샤빈이 쐐기골을 넣었다. 네덜란드는 이렇다 할 반격도 못하고 수비만 하다가 러시아에 완패했다.

한편 21일 오스트리아 빈 에른스타하펠 슈타디온에서 열린 8강전에서는 터키가 승부차기 끝에 크로아티아를 제치고 4강에 올랐다. 0-0이던 연장 후반 종료 1분 전 크로아티아에 선제골을 내준 터키는 연장 후반 추가시간에 극적으로 1-1 동점을 만들었다. 그러고는 승부차기에서 3-1로 승리했다.

바젤(스위스)=이해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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