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배칼럼>개혁의 이념적 색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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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총선을 앞두고 각 당이 제 색깔내기에 분주하다.지난 해부터 보수(保守)가 유행이 되어 너도 나도 보수론을 내세우더니 비자금 파동이 일고부터는 청렴성과 도덕성이 선거의 가장 큰 이슈가될 것으로 보인 탓인지 각당이 또 모두 개혁성을 주창하고 있다. 신한국당(가칭)은 역사 바로세우기를 바탕으로 한 개혁을 주장한다.국민회의가 온건개혁을 근거로 한 새정치를 주장하고,비자금 사건을 터뜨린 민주당은 자기네들이 개혁의 본산인양 과시한다.심지어 보수 본류(本流)를 자처하며 개혁이 못마땅 한 자민련조차 점진개혁을 주장하는 판이다.극우세력에서 진보파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개혁을 주장하니 진짜 개혁의 실상은 무엇인지 혼란스러울 따름이다.
보수세력과 부패세력이 뒤섞여 있으며,진보와 좌파가 혼동되고 있다.표를 얻기 위해서라면 어떤 세력과도 연대하는 노선부재(路線不在).이념부재의 정략적 전술만이 횡행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그들이 지향하는 개혁의 의미를분명히 해야 한다고 본다.야당이 5,6공 세력을 수용하는 것이과연 새정치와 어떻게 연계되는 것인지 분명히 해야 하며,여당이그들의 개혁성을 담보로 진보적인 인사들을 영 입하는 데 대한 설명도 있어야 한다.
아마도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개혁성이라는 것은 권위주의적인 권력을 분산시키고,국민의 기본권을 바탕으로 법치(法治)를 보장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그리고 규제를 완화하고,덜 간섭하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아직도 정부의 권위주의적 행태가 가시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권력의 1인집중이 문제가 되는 정치적 구조 아래에서,사회의 정당한 게임의 룰이 곧잘무시되는 현실에서 그와 같은 원칙의 추구만으로도 가장 급진적인개혁이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정치권에서 적용되는 기준은 과거의 반(反)정부운동에 참여했던 전력(前歷)이 곧 개혁성인 것처럼 착각되고 있다.지난날 군사통치에 항거하던 시절에는 반정부적인 보수세력과 자유주의적 진보세력이 반체제적(反體制的)인 좌파세력 과 연대해 투쟁했었다.거기에는 보수와 혁신,우파와 좌파가 반정부라는 이름아래 공존할 수 있었다.그렇지만 지금 그 반정부 세력중 일부가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시점에서 반정부 세력의 성향에 대해서는 확실한 분류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신한국당 내부에서도 이른바 개혁적 인사들의 영입에 대해 이념적 검증을 요구하는 소리가 제기되고 있다.운동권이 모두 개혁인사가 아니며,진보파가 모두 개혁파가 아니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런 목소리는 주로 5,6공의 잔여세력인 민정계에서 제기되고 있기 때문에 별로 호응을 받고 있지 못한 것 같다.
그러나 민정계의 주장과는 다른 시각에서 국민들은 집권당의 개혁의 방향에 대해 명백한 비전과 색깔을 밝힐 것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신한국당에 이미 들어와 있는 인사 가운데는 그들의 성향이 명백하게 좌파에 속한다고 할 사람들이 몇몇 있다.그리고 현재 신한국당이 영입을 모색하고 있다는 인사들 중에도 역시 반정부를 넘어 반체제적운동을 벌였던 인물들이 없지 않다.그들이 이제 국회의원 공천을 받아 신한국당 후보로 나설 경우 그들의 이념적 성향에 대해 당 차원의 책임있 는 설명이 있어야 국민들의 불안감이 해소될 것이다.
우리는 이같은 기준을 야당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믿지만 특히 집권당이나 정부는 그들 정권의 성격을 분명히 국민에게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본다.
신한국당측에서는 진보적 인사들이 근로자지역 등에서 득표력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그렇다면 득표력 중심으로 아무나 공천하면 되지 구태여 개혁성이나 역사 바로세우기를 주장할 필요가없지 않은가.실제로 가장 중요한 역사 바로세우기 는 우리의 자유민주주의적 정통성을 확보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편집국장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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