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이 효자다, 바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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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호 36면

소니의 공동 창업자 중 한 사람인 모리타 아키오 전 회장은 “국가경제의 근본은 제조업이다. 쉴 새 없이 뭔가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라고 역설했다. 1990년 미국 MBA 명문 와튼 스쿨의 졸업식 초청연설에서 그는 “후기 산업사회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와튼의 금융 지향적 900여 졸업생에게 제조업 직장을 선택할 것을 권고했다. 미국이 경제를 살리려면 제조업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충고도 그는 잊지 않았다.
오늘의 소니는 그때의 소니가 아니다. 소니의 제조업 신화는 다섯 번이나 붕괴됐다. 그럼에도 매번 오뚝이처럼 일어났다. ‘우리 제품을 우리 스스로가 부단히 갈아 치우지 않으면 경쟁자가 언젠가 갈아 치운다’는 소니의 강박관념이 그 원동력이라고 한다.

지식경제화와 경제의 금융화 시류를 타고 제조업은 찬밥 신세가 된 지 오래다, ‘3D직종’ 소리 들어가며 선박 한 척 주문받아 수천 명이 2~3년씩 매달려 봤자 투자은행 한 번 베팅의 10분의 1도 못 번다는 자조도 나돌았다. 그래서 제조업은 곧 중국같이 노임이 싸고 환경이 열악한 ‘비지땀 작업장’(sweat shops)을 연상케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1년 만에 이런 인식을 바꿔놓고 있다. 2004년부터 2007년 중반까지 세계 경제는 월스트리트의 ‘7공자’를 비롯한 글로벌 금융회사들의 전성시대였다. 거래 외형과 이윤, 연봉이 다투어 기록 경신 행진을 벌였다.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1년 만에 이들의 이윤은 절반으로 격감하고 베어스턴스에 이어 월스트리트 랭킹 4위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가 돈을 꾸러 한국을 기웃거리는 처지가 됐다. 97년 한국 외환위기의 영락없는 미국판이다. 벽돌과 굴뚝의 바탕 없는 ‘금융 모래성’의 허망함이라고나 할까.

금융위기가 오래 끌수록 제조업 왕국 독일과 일본의 저력은 갈수록 빛을 발한다. 독일은 지난 2년 동안 일자리 160만 개를 창출해 완전고용에 육박하고 있다. 세계적 성장 둔화와 강한 유로화, 고유가의 3대 외부 악재도 ‘엔지니어와 품질의 독일’의 발목을 잡지 못한다.

독일 엔지니어링 산업은 60년대 이후 40년 만에 최대 호황을 맞고 있다. 세계가 독일 기계를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세계 제조업 센터인 것은 분명하지만 중국 제품과 독일 및 일본 제품은 품질 등급과 수준이 다르다.

영국은 지난 10년 사이 경제의 금융화로 제조업에서 일자리 100만 개가 없어졌다. 롤스로이스의 CEO 존 로즈 경은 제조업이 더 이상 산업혁명의 잔재가 아니라며 독일과 북부 이탈리아처럼 고부가가치 제조업의 르네상스를 주창하고 있다.

더욱 주목을 받는 것은 금융자본주의의 심장 미국의 변화다. 최근 미국의 무역적자 축소는 제조업 수출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70년대 이후 미국 제조업 생산은 70%가 늘어났지만 공기오염은 58%가 줄어들었다. 제조업이 환경친화적으로 고도화되고 있다는 증거다. 미국은 여전히 연구개발과 기술혁신의 세계 센터다. 살아 있는 노벨상 수상자의 70%가 미국에 거주한다. 중국의 생산기지에 제조를 맡길 경우 태평양을 건너오는 제품의 운임이 갈수록 비싸져 생산기지를 미국으로 환원시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독일 및 일본 기업들과 네트워킹 생산 방식을 통해 저가품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중국의 몸부림 또한 처절하다. 일본과 독일의 ‘기술 지키기’도 갈수록 가관이다. 세계적 공작기계 메이커인 독일의 트룸프는 중국에 제품 공정별로 세 개의 공장을 분산 건설 중이다. 한 곳에 일관해서 집중시킬 경우 중국에 기술이 유출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제조업은 곧 저임금이란 등식도 옛말이다. 고부가가치 제조업일수록 임금 수준도 높다. 정보화 강국은 기술정보화가 제조업에 접목돼 제조업의 혁신과 고도화로 이어질 때 진정한 의미가 있다. 국민의 보유자산 가운데 금융자산이 15%에 불과한 나라에서 동북아 금융허브를 넘보고, 지식경제화의 구호에 홀리다 못해 산업자원부의 명칭마저 듣도 보도 못한 지식경제부로 바꾸는 우리 관료들을 향해 ‘제조업이 효자다, 바보야!’를 한번 외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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