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도축장 협정 위반 땐 수입 중단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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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호 03면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왼쪽)이 21일 외교통상부에서 한·미 쇠고기 추가협상 결과를 설명하는 동안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오른쪽)이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신인섭 기자

“좀 도와 주십시오.” 21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 중앙청사에서 열린 한·미 쇠고기 추가협상 결과 발표 기자회견장.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협상 결과가 국민이 안심할 만한 수준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김 본부장은 1시간여 동안 진행된 브리핑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역시 “정부의 진정성을 알아 달라”고 호소했다.

한·미 쇠고기 추가협상 뭘 담았나

이날 발표 골자는 30개월 이상 쇠고기와 30개월 미만 소의 머리뼈·뇌·눈·척수를 수입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 정부는 ‘한국 수출용 30개월 미만 증명 프로그램(한국QSA)’을 만들어 운영하기로 했다. 한국QSA를 지키지 않은 쇠고기가 수입될 경우 한국 정부는 전량 반송하고, 미 정부에 요청해 해당 작업장의 수출 중단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광우병 대책회의는 “기만적이며 생색 내기 협상”이라며 재협상을 고집하고 있다. 내장과 등뼈 수입 금지가 이뤄지지 않았고 민간 업자의 자율 규제만으론 30개월 이상 쇠고기의 수입 차단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 차단=QSA란 미 농무부의 품질 평가 프로그램으로 민간업체들이 자율적으로 품질 관리를 하는 방식이다. 미 육류업체들이 자발적으로 기준을 정하면 정부가 제대로 운영되는지 점검하고 문제가 없으면 인증해 준다. 미 3개 육류업체는 20일(현지시간) 농무장관과 무역대표부 대표 앞으로 ‘한국에 30개월 미만 쇠고기만 수출하겠다’는 QSA 서한을 보냈다.

국내에선 ‘30개월 미만 수입’ 원칙에 합의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미국의 수출증명(EV) 시스템이 적용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김 본부장은 “애초부터 EV 시스템 적용을 요구할 생각이 없었다”며 “QSA는 미 내수용 쇠고기에 대한 품질 검증 시스템으로 수출용 쇠고기 검증 시스템인 EV보다 약한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미 내수용 쇠고기 품질 검증 시스템에 한국민이 원하는 30개월 미만이라는 조건을 덧붙여 협상했다는 것이다.

◇수입 제한 부위 확대=30개월 미만 소의 머리뼈·뇌·눈·척수의 수입이 차단된 것은 애초 기대보다 진전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국제수역사무국(OIE)이 정한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 부위를 제외한 모든 부위를 수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김 본부장은 “미국 측에서 OIE 기준과 어긋나는 내용이라며 반발했지만 이런 부위가 지금까지 수입된 적이 없었고 수입될 가능성도 없는데도 포함시킴으로써 괜한 국민 우려를 낳고 있다는 점을 들어 협상 내용에 포함시켰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내장이나 등뼈는 수입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던 2003년 총 20만t의 수입량 중 1만t 정도가 내장이었다. 김 본부장은 이에 대해 “국제 기준으로 SRM이 아니고 과거에 수입된 적이 있었던 만큼 수입을 막을 명분이 없었다”며 “검역을 강화하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우희종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30개월 미만 소의 뇌·척수 등을 수입하지 않기로 명시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유럽연합(EU) 기준에서 보면 SRM인 내장이 수입되는 점은 여전히 문제”라고 지적했다.

◇검역 권한 강화=4월 협상 타결 내용엔 문제 발생 육류사업장의 작업 중단을 결정하는 주체가 미국 정부인지 한국 정부인지 분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협정에선 그 주체를 한국 정부로 명시했다. 즉 어느 작업장의 쇠고기에서 문제가 발생했다면 한·미 양국이 실무협의와 고위협의를 한다. 4주 이내에 합의가 안 되면 한국이 해당 작업장에서 수출되는 물량에 대하여 강화된 검역조치를 연속 5회 실시할 수 있다. 이 기간 2회 이상 식품안전 위해 요소가 발생할 경우 한국 정부는 해당 작업장의 수출 중단을 미 측에 요구할 수 있고, 미국은 즉각 수출작업을 중단시켜야 한다. 현지 작업장에 대한 점검 권한도 강화됐다. 예전에는 대표 샘플 작업장에 대한 검사만 가능했지만, 앞으로는 한국 정부가 작업장을 특정해 점검할 수 있게 됐다.

◇한 달 뒤 갈비 등 수입 가능=정부는 이 같은 내용의 수입위생조건을 23일 고시할 방침이다. 이날 오전 총리 주재 관계부처 장관회의에서 수입위생조건 부칙 수정안을 검토한 뒤 확정하면 농식품부 장관이 담화문을 발표하고 고시 게재를 행정안전부에 요청할 예정이다. 이 고시는 이틀 후 관보에 게재되면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이에 따라 지난해 10월 검역 중단으로 국내 대기 중인 미국산 쇠고기가 이르면 이달 말 시중에 풀릴 것으로 보인다.

이들 물량은 우선 식당에 공급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이 새로 수출하는 쇠고기가 한국에 도착하기까지는 한 달 이상 걸릴 전망이다. 미 쇠고기 수출업체들이 농무부로부터 ‘한국QSA’의 승인을 받기까지 2주일 정도 걸리고, QSA에 맞는 쇠고기가 바다를 건너 한국에 도착하기까지 또 2주일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산 쇠고기가 한국 소비자의 식탁에 오르기까지는 상당 기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대부분 유통업체가 미국산 쇠고기 판매를 자제하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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