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올해 새로 발간되는 조지훈 전집 11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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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얇은 사(絲)하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승무」시인 조지훈(趙芝薰.1920~1968)의 유작을 남김없이 수록한 『조지훈 전집』이 출간된다(나남출판).
지훈은 미당(未堂)서정주(徐廷柱)와 청마(靑馬)유치환(柳致環)을 거쳐 청록파에 이르는 한국 현대시의 주류를 완성함으로써 20세기 한국시단의 전반기와 후반기를 이어준 시인.
하지만 그는 단순한 시인의 범주를 넘어 한시대의 아픔과 일생을 같이한 지사(志士)이자 현대판 선비로도 이름이 높았다.특히일제의 폭압적 체제나 이승만(李承晩)정권의 독재정치,그리고 박정희(朴正熙)의 제3공화국에 굴하지 않은 지조로 도 유명하다.
『조지훈 전집』은 이 이번에 처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지난 73년 모두 7권으로 묶여 첫선을 보였다(일지사).그러나 그동안 절판으로 구하기 어려웠던 게 현실.중고서점에서는 한질에 30만원까지 호가했다.따라서 이번 전집출간은 시인이라는 명성에 가려졌던 지훈의 전모를 새롭게 짚어보는 계 기가 될 것이다.또 「96 문학의 해」를 더욱 뜻깊게 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새 전집은 모두 11권으로 꾸며진다.구체적 내용을 간단히살펴보면▶기존 시집의 원전을 확인하면서 출간 순서대로 정리한 시모음집▶시에 관한 그의 독창적 시각을 모은 『시의 원리』▶문학 전반에 관한 통찰을 보여주는 『문학론』▶일상에 대한 작가의태도를 요약한 수상록 『돌의 미학』▶절개있는 지성을 강조한 논설 『지조론』▶한문책을 우리말로 옮긴 『채근담』▶한국민족운동의흐름을 조명한 『한국민족운동사』▶국학계(國學界)에서 걸출한 저서로 인정받는 『한국문화사서설』▶우 리의 멋과 민속을 파헤친 『멋의 연구』▶조지훈 연구서 2권 등이다.
이 가운데 시집과 『시의 원리』『한국문화사서설』등 4권이 이달 중순 출간되고 나머지도 8월말까지 완간될 예정이다.한글세대에 맞게 원문의 한자를 한글 다음에 괄호로 처리했으며 73년 전집에 빠진 일부 에세이도 포함시켰다.또한 78년 고려대에서 간행된 『조지훈 연구』이후에 나온 연구성과도 엄선,한권으로 엮었다.이와함께 유족들이 소장한 그의 한시(漢詩) 80여편도 별책으로 간행할 계획이다.
편집위원은 모두 9명.73년 전집에 참여했던 홍일식 고려대총장.인권환 고려대교수.박노준 한양대교수 외에 홍기삼 동국대교수.김인환 고려대교수.최동호 고려대교수.이성원 서울대교수.최정호연세대교수.이동환 고려대교수 등 중견학자들이 동 참,시.논설.
학술서적등 장르별로 지난 2년동안 활발한 토론회를 가지며 꼼꼼히 검토했다.
이번 전집의 의의는 외래문화의 홍수속에서 단절위기에 놓인 한국사상의 복원노력으로 요약된다.지훈의 꿈은 외국문물을 수용하면서도 유교.불교.원시종교등 우리 전통사상을 두루 섭렵하며 새로운 한국사상을 창출하는데 집중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학자로서의 연구 활동 이외에 고려대 부설 민족문화연구소 초대회장을 역임하는등 국학계의 토대를 마련하는데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홍일식 고려대총장은 『지훈은 문필가.시인.학자.지사로서 항상민중편에 서서 민족 전체의 생존을 위해 애쓴 진정한 지성인』이라며 『한국 현대정신사의 지형을 이해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지훈이라는 거목을 통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출 판사와 유족은인세의 50%를 조지훈 기념사업회 기금으로 내놓기로 하는 한편8월부터 1년동안 매달 한차례씩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조지훈 기념강좌도 개최할 예정이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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