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는 아름다워] '이윤택號' 국립극단 대중주의 뿌리 내릴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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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작가.연출가인 이윤택(53)은 '한국의 셰익스피어'를 꿈꾸는 사람이다. 자신의 작품을 향해 통속적이라는 비판의 화살이 날아올 때면 이씨는 "당대에 셰익스피어도 통속작가였다"고 응수한다.

존 매든의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엔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시대의 권위에 도전하는 고독한 천재 '통속작가' 셰익스피어의 모습이 담겨 있다. 영화에서 그는 연극을 귀족의 오락물 차원에서 끌어내려 당대의 건강한 대중과 호흡을 함께하려는 아웃사이더적인 기질을 드러낸다. 그가 여주인공 바이올라와 엮는 사랑도 통속성의 극치다.

이윤택이 이런 셰익스피어를 닮겠다고? 셰익스피어 전공자들이 들으면 "언감생심, 고얀 놈"이라며 이씨를 쏘아붙일 게 뻔하다. 하지만 당대적 관점에서, 시공을 초월해 두 사람을 엮는 공통분모는 대중주의 연극에 대한 집착이다. 이씨가 비난받는 통속성은 대중주의 연극의 한 코드로서 관객의 심금을 울리는 작동원리다.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7일까지 공연하는 국립극단의 '뇌우(雷雨)'는 이런 이윤택표 연극이다. 중국 근대극의 선구자 차오위(曹禹) 원작으로 올해 초 예술감독을 맡은 이씨의 첫 연출작. 따라서 이 작품은 이씨 휘하의 국립극단이 앞으로 어떻게 갈 것인가, 그 향배를 가늠하는 시금석이나 다름없다. 이씨는 해답으로 '보통관객'의 눈높이에 맞춘 아기자기한 대중 취향의 연극을 보여주었다.

이씨의 이런 작품 경향은 국립극단 54년 역사의 주류적 흐름과는 대척점에 있다. 국립극단은 지금까지 일제시대 선구적 지식인들이 일궈놓은 '신극(新劇)'의 법통을 확고부동하게 이어왔다는 자부심이 있다. 사조로 치면 리얼리즘이요, 인맥적인 성향으로 보면 계몽적인 권위주의 연극이었다. '뇌우'를 연출한 바 있는 유치진-이해랑, 그리고 현재 한국 연극의 주류를 이루는 이들의 적자(嫡子)들이 방대한 계보를 형성한다. 이들은 엘리트 연극이라는 명분 아래 대중이 객체가 되는 연극을 지향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한국 연극의 계보에서,'문화 게릴라'로 불리며 야인처럼 언저리를 떠돌던 이씨가 국립극단 예술감독이 된 것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사건이다. 그가 단순한 인물의 물갈이 차원을 벗어나 국립극단 연극의 본질(작품 경향)적인 변화를 꾀하려 하고 있다. '뇌우'는 그런 변화, 즉 대중주의 연극의 시발점인 것이다.

영국 런던 템스 강변에는 1996년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한 명물 글로브 극장이 뭇 관광객들을 맞고 있다. 이 극장은 17세기 초 셰익스피어가 속한 '체임벌린스 멘'의 본거지로 셰익스피어극의 산실이었다. 셰익스피어를 닮고자 하는 이윤택이 국립극단을 이끌고 국립극장을 보통 관객이 넘실대는 한국의 글로브 극장으로 만들 것으로 기대해 본다.

정재왈 공연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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