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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운영 힘들어 "애장품 팝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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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때 묻은 애장품 앞에서 "무덤까지 지고 갈 것도 아닌데"라며 너털웃음을 짓는 문신규 토탈미술관 설립자. [신인섭 기자]

전국은 지금 미술관.박물관 시대다.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이 내세운 '미술관 1000개 건립 정책'이 뒤늦게 시동을 건 꼴이다. 2000년대 들어 등록한 미술관 수만 142곳이니 1999년까지 문을 연 147곳과 거의 맞먹는다. 건물이 번듯하게 올라가고 간판만 건다고 다 미술관은 아니다. 정작 그 뒤가 문제다.

볼만한 전시 기획, 소장품 관리, 운영 전반을 이끌어갈 학예연구사(큐레이터) 육성, 사회교육 프로그램 마련 등 미술관은 돈을 버는 곳이 아니라 뭉텅이로 쏟아붓는 곳이다. 빠듯한 예산으로 미술관 공간을 마련하고 나면 전시장에 바람이 불건 비가 오건 관심을 끊는 한국형 미술관 세우기 열풍은 개발시대의 후렴처럼 위험해 보인다.

*** 입장료만으론 턱없이 부족

지난 5일 오후, 서울 평창동 언덕배기에 있는 토탈미술관(관장 노준의)에서 의미심장한 특별전 하나가 막을 올렸다. '달 위의 문씨(Mr. Moon On the Moon)'란 제목이 재미있다. 토탈미술관 설립자인 건축가 문신규(66)씨가 30여 년 모아온 애장품을 탈탈 털어 꾸민 전시회다.

미술관 소장품으로 등록된 미술작품은 팔 수 없는 제약에 푼돈처럼 들어오는 입장료 수입, 도록 판매 등 쥐꼬리만한 수익사업만으로는 미술관을 꾸려가기 어려운 현실이 집안에서 즐기던 개인 기호품을 자선 장터에 내놓게 된 사연이다. 1000원짜리 재떨이에서 1000만원짜리 전통 목가구 약장까지, 수 천점 미술동네 언저리 물건이 손님들을 부른다. 디자인 전문지 '꾸밈'을 발행했던 문신규.노준의 부부의 안목이 빛나는 각종 디자인 명품이 싼값에 봄날을 부른다.'봄이 와도 세상은 아직 봄이 아니다(春來不似春)'로 시작하는 초청장은 이런 사연을 담고 있다.

"민생이 갈수록 어렵고 민심 또한 혼란하다. 국공립미술관도 아니고 기업미술관도 아니면서 개인으로서 현대적인 복합매체의 미술관을 연 지 20년이 되었다. 국가나 재단에서 어떤 보조금도 받지 못한 채 미술관을 소신있게 운영하는 것이 참으로 어렵기만 하다. 어려운 때일수록 서로 돕고, 각자 마음 비우는 태도로 사는 것이 필요하다. 미술관을 해오면서, 토탈디자인을 운영하면서 모은 물건들을 싸게 팔아 의미있는 일에 쓰고자 한다."

문신규씨는 "판매 금액의 30%는 '아름다운 가게'와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 노인복지단체 등과 나눠 복지기금 마련에 쓰겠다"고 밝혔다. 운영자금이 바닥난 사설미술관이 자긍심 넘치는 모임을 만들어 등 시린 이웃과 어깨동무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문씨는 84년 경기도 장흥에 첫 야외조각 공원을 세우고 87년에 문화부에 사립미술관 1호인 토탈미술관을 등록한 미술관 시대의 개척자로서 개인미술관 꾸려가기의 어려움을 이렇게 '미술적인'행사로 토로했다. 25일까지. 02-379-3994(www.totalmuseum.org).

서울 안국동 사비나미술관 이명옥(49)관장은 부족한 미술관 기금을 위해 부지런히 미술책을 쓴다. '머리가 좋아지는 그림 이야기' '날씨로 보는 명화' '미술에 대해 알고 싶은 모든 것들' 등 미술 도서 분야에서 베스트 셀러를 기록한 책 인세로 구멍나는 미술관 예산을 빠듯하게 때운다. 이응노미술관(관장 박인경)은 어려운 살림살이 때문에 유가족 소장품인 이응노의 작품을 팔아 운영비로 쓰고 있다. 모란미술관은 돈이 없어 기획전 수를 줄이는 중이다.

*** 文씨 '아름다운 가게' 등 기부도

노준의 토탈미술관 관장이 이끌고 있는 '자립형 사립미술관네트워크(이하 자미넷)'가 적극적으로 나서 올해 문예진흥기금 700만원을 따내고 문화관광부에서 예산 3000만원을 끌어낸 것도 몸으로 느낀 이런 위기의식에서 왔다. 제비울미술관.환기미술관.모란미술관.토탈미술관.사비나미술관.이응노미술관이 참가한 '자미넷'은 이 기금으로 올 가을 '미술관 페스티벌'을 열어 정부와 시민들의 관심을 촉구할 예정이다. 김준기 '자미넷' 간사는 "문예진흥원이 올해부터 사립미술관 큐레이터들을 위한 지원금을 책정했으나 기획예산처에서 인건비를 국가에서 지원한 예가 없다고 집행을 거부했다"며 "미술관 문화에 대한 사회적 차원의 관심과 시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02-736-4371.

정재숙 기자<johanal@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shin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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