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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통 6일 서울 ↔ 부산행 타보니…'2% 부족한' 고속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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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 서울역사에서 고속철을 타는 곳은 3층이지만 2층 개찰구에는 새마을.무궁화호 개찰구라는 별도의 표시가 없어 이용 승객들이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박종근 기자]

지난 1일 개통한 고속철도를 설레는 마음으로 처음 타본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실망과 함께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어머니 제사를 위해 지난 3~4일 아내, 두 딸과 함께 부산 형님댁을 다녀온 회사원 K씨(41.서울 영등포구 신길7동)도 예외는 아니다.

그는 "고속철에 아직은 불편한 점이 많다"며 "고속철의 장점을 살리려면 승객 입장에서 서비스를 다시 꼼꼼히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3일 오전 11시30분. 택시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한 K씨 가족은 2층 대합실에서 개찰을 기다렸다. 그러나 고속철을 탑승하는 곳은 3층이었다. 서부역 쪽에서 들어온 K씨는 안내판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개찰 뒤 6번 플랫폼으로 내려가보니 객실 번호가 뒤쪽에 작게 달려 있어 잘 보이지도 않았다. 객실 번호를 잘못 보고 차에 오른 사람도 많았다. 20대 남자가 K씨에게 와서 비켜달라고 한다. K씨가 "여기는 13호차가 아니라 14호차"라고 하자 그는 돌아섰다.

고속철은 뚜렷한 이유도 설명하지 않은 채 출발시간인 낮 12시보다 5분이나 늦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광명역을 지나 속도가 빨라졌고 터널을 통과할 때는 소음이 심했다. 터널구간에서는 한낮인데도 어두워 등을 켜지 않으면 책 읽기가 불편했다.

K씨 가족이 앉은 좌석은 뒤로 가는 곳인 데다 창틀과 커튼으로 막혀 있었다. 창 밖을 구경하려면 목을 빼고 불편한 자세를 취해야 했다. 터널과 방음벽이 이어진 탓에 바깥도 구경할 게 많지 않았다. 광명~동대구의 경우 터널과 방음벽 구간이 전체 연장의 64%나 된다.

모르는 사람과 마주앉아야 하는 객차 중앙의 승객들은 시선을 제대로 두지 못해 불편해했다.

짐을 올리는 선반 밑바닥이 유리로 돼 있는 것도 이상했다. 멀리 떨어져 앉은 사람까지 거울처럼 비치고 있었다. K씨 부인은 "흐트러진 모습을 남이 볼까봐 잠을 청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객차 천장에는 TV가 달려 있고 방송 화면이 나왔지만 소리는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큰딸이 헤드폰을 찾지만 정작 좌석에는 헤드폰을 꽂을 데도 없다. 헤드폰을 사용할 수 없도록 만든 것이다. 여자 승무원은 "원래 그렇게 제작됐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대답했다.

K씨 가족이 탄 고속철은 10분 가까이 지연된 오후 3시쯤 부산역에 도착했다. 새로 꾸민 역사가 멋있었지만 화장실이 좁아 여자들은 화장실 밖까지 길게 줄을 섰다.

제사를 마친 K씨는 형제들과 함께 휴일인 지난 4일 경남 진주의 부모님 산소에 다녀오기로 하고 아침 일찍 부산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남해고속도로가 밀린 탓에 오후 2시30분 마산발 서울행 새마을호는 탈 수 없을 것 같았다. 결국 오전 11시쯤 마산역에 들러 예매했던 기차표 네 장을 환불했다.

K씨는 "고속철 개통으로 마산에서 서울로 가는 밤 기차가 없어졌기 때문에 낮시간 표를 끊었더니 이런 문제가 생겼다"며 "출발시간이 3시간 반이나 남았는데도 수수료를 모두 1만2200원이나 달라고 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강찬수 기자<envirepo@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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