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프리즘] 중·일 “영토보다 자원”… 윈-윈 실용외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중국과 일본의 거리가 크게 좁혀졌다. 아주 어려운 문제를 두 나라가 함께 풀었기 때문이다. 양국은 16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동중국해 유전·가스전 공동 개발에 합의했다. 해결 가망 없는 영유권 다툼으로 더 이상 시간을 보내지 않겠다는 양국 정부의 전략적 선택이 서로 맞아떨어진 결과다.

요점은 세 가지다. 우선 일본이 주장하는 배타적 경제수역(EEZ)의 경계선(양국 중간선)에 걸쳐 있는 룽징(龍井·일본명 아스나로(翌檜)) 주변 해역을 공동 개발키로 했다. 자국 대륙붕이 끝나는 지점을 영해로 주장한 중국 측 입장에서 보면 주권 해역 안쪽이다. 중국이 이미 독자 개발을 시작한 춘샤오(春曉·시라카바(白樺)) 가스전에 대한 일본 측 출자도 허용됐다. 끝으로 가스전 주변 해역에 대한 공동 개발도 계속 협의하자고 약속했다.

중국 외교부 장위(姜瑜) 대변인은 “중국은 ‘같음을 추구하나 다름도 인정하는 정신(求同存異)’을 발휘해 서로가 승리하는 성과를 끌어냈다”고 자평했다. 중국 정부의 한 소식통은 “이번 합의의 핵심은 ‘제1보’와 ‘전략적 선택’이라는 두 가지”라고 강조했다. 공동 개발키로 합의한 구역은 2600㎢에 불과하지만 상징성은 크다. 협력이 순조로울 경우 공동 개발을 전 해역으로 확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영토에 관한 다툼은 언제 결론 날지 모르는 사안이다. 그러나 이번에 공동 개발키로 합의한 해역 일대는 ‘제2의 중동(中東)’으로 불릴 만큼 원유·가스 매장량이 풍부할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이다. 중국 유전 전문가들은 “이 지역에 매장된 가스는 약 5조㎥, 원유는 1000억 배럴 정도 될 것”이라고 추산하고 있다.

현재 중국은 에너지 확보를 ‘국가의 사활적 과제’로 규정하고 있다. 국가 최고 지도자의 해외 순방은 어김 없이 에너지 확보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언제까지나 일본과 영유권 다툼이 있는 지역 문제에서 국경선 타령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 중국 정부의 판단이다. 국경선 문제는 일단 추후 협의 사항으로 미뤄놓고, 개발부터 하고 보자는 계산이다.

실리는 또 있다. 일본과 공동 개발할 경우 일본의 앞선 기술을 전수받는 이익도 무시할 수 없다. 분쟁의 여지를 털어냈기 때문에 외자를 유치하기도 쉽다. 기술과 자본을 한꺼번에 손에 쥘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의 동맹인 일본을 중국 쪽으로 이끌면서 지역 내 안보 및 국제정치적 협력도 강화할 수 있게 됐다.

일본도 외교·정치·경제에서 모두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우선 영토에 관해 일본의 주장을 관철시켰다는 점이다. 일본은 한국과는 독도에 대해, 러시아와는 북방영토에 대해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국제적으로 영토 분쟁을 일삼는 국가라는 따가운 시선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합의로 최소한 동중국해 주변에 대해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을 하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받은 셈이다. 국내 정치적으로도 상당한 ‘플러스’가 될 수 있는 부분이다.

실제로 상당한 매장량이 발견되면 일본은 엄청난 실리를 챙기게 된다. 공동 개발의 가치는 단순히 자원 개발 이익을 공유하는 것에만 머물지 않는다. 미국 중심의 동북아 안보 체제에서 줄곧 경쟁자로만 인식했던 중국을 새 협력의 파트너로 확장하는 효과도 얻었다. 한편으론 경쟁을 하면서도 거대한 중국 시장을 차분히 공략할 토대를 만든 셈이다.

동중국해 유전은 두 나라 관계 개선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이 문제가 풀리면서 중·일은 군사와 정치·외교·경제의 모든 분야에서 명실상부한 ‘전략적 호혜’ 관계로 올라설 전망이다. 일본 언론들은 “과거와는 차원이 전혀 다른 관계로 격상되는 계기”로 평가했다. 아시아의 두 대국이 보이는 전략적 행보에 세계적인 관심이 몰리고 있다.

베이징·도쿄=진세근·김동호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