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원짜리 티켓, 스타를 만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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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10년 전 스승 김남윤 교수의 무릎에 앉아있던 권혁주<左>는 이제 23세 청년 바이올리니스트로 성장했다. 그는 ‘금호 영재 콘서트 시리즈’ 10주년을 기념한 ‘홈커밍’연주에 참여한다. [금호아시아나 문화재단 제공]

1998년 7월 7일 종로구 사간동 금호미술관. 당시 열살이던 레이첼 리가 바이올린을 들고 전시실에 마련된 간이 무대에 섰다. ‘금호 영재 콘서트 시리즈’의 첫 공연이었다.

“‘완성 덜 된 아이들 연주를 과연 누가 보러올까’하고 걱정했어요.” 당시 금호 문화재단에서 일했던 장수진 씨의 기억이다. 장씨는 문화재단의 단 둘 뿐인 직원 중 한 명이었다.

그런데 간이 의자 150여개가 모두 찼다. 3000원짜리 티켓은 동이 났다. 직원들이 피아노를 최대한 벽쪽으로 붙여 객석을 더 확보했을 정도다. 이후 피아니스트 손열음,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 등이 잇따라 무대에 섰다. 당시 어린 음악가들이 연주할 수 있었던 무대는 콩쿠르 정도가 전부였다. ‘금호 영재 콘서트 시리즈’는 현재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이들의 데뷔 무대로 기록됐다.

만 14세 이하의 음악가를 위한 이 무대는 10년 동안 한번도 쉰 적이 없다. 매주 토요일 오후 3시면 어린 연주자의 무대가 열렸다. 그동안 거쳐간 연주자가 500명이 넘는다. 피아니스트 김선욱(20), 첼리스트 고봉인(25), 베이시스트 성민제(18), 첼리스트 장우리(24) 등 신예들이 ‘금호’ 출신이다.

첫 아이디어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고(故) 박성용 전 명예회장이 냈다. “어린 아이들이 음악을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특한데 연주 무대가 없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취지였다.

이 무대에서 좋은 연주를 한 아이들에게는 전담 직원이 붙었다. 현재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문제는 없는지 지속적으로 소식을 듣고 명예회장에게 보고하는 일을 했다.

박 회장은 3000원짜리 티켓을 꼭 자신의 돈으로 직접 사서 모든 공연을 지켜봤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30만~50만원의 연주료를 쥐여주고, 해외에서 초청하는 경우엔 비행기 편도 마련해줬다. 150석 남짓한 공연장이 꽉 차도, 뻔한 적자였다. 이익은 나지 않았지만 연주자가 남았다. 세번째 주자였던 손열음(22)은 뉴욕·도쿄 필과 협연하는 피아니스트로 자라났다. 작은 바이올린으로 무대에 섰던 권혁주(23)는 이후 퀸 엘리자베스, 파가니니 콩쿠르 등에서 좋은 성적을 올렸다.

이 무대를 거쳐간 ‘영재’가 ‘인재’로 남자 무대에 서려는 경쟁도 치열해졌다. 첫 콘서트는 프로필을 보고 영재를 선별했지만 3개월 후 오디션을 열기 시작했다. 현재 6개월에 한번 열리는 오디션은 평균 10대1 넘는 경쟁률을 보인다. 금호아시아나 문화재단은 “같은 또래의 음악 하는 학생과 학부모가 참 많이 온다. 지방의 예술고등학교 학생들이 버스를 빌려 함께 보러 오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이같은 음악 ‘등용문’의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연주회가 금호 아트홀에서 열린다.

7월 5일에는 금호 영재 출신 연주자 30여명이 모인 오케스트라와 권혁주가 ‘홈커밍’ 연주를 한다. 12·19일에 15세 미만의 ‘현역’ 영재들의 무대가, 26일에는 선후배 영재가 함께하는 공연이 준비돼있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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