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폰>브루스 스프링스틴 "톰 조드의 유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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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세계 10위권으로 진입한 국내 음반시장의 규모에 걸맞게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음반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선택의 폭이 넓어진 가요.팝 팬의 혼란도 그만큼 가중되는 상황.이번주부터 화제의 음반을 엄선,간략한 평과 함께 소개한다.
[편 집자註]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미국에서는 「국민가수」라 불러도 좋을 만큼 폭넓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가수다.특히 블루칼라 계층을 비롯한 서민층의 지지도는 가위 절대적이다.반전운동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았던 73년 데뷔한 이래 그는 「아메리칸 드림」의 환상뒤에 가려진 미국 「보통사람들」의 박탈감과 고통.애환을 끊임없이 들춰내고 비판해 왔다.
그런 음악적 행로에 비춰볼때 지난달말 발표(다음달 중순 국내발매 예정)한 13번째 음반의 표제를 『톰 조드의 유령』(The Ghost of Tom Joad)이라고 붙인 것은 자연스런귀결로 보인다.톰 조드는 존 스타인벡의 소설 『 분노의 포도』의 주인공.소농(小農)조드 일가의 가족사를 통해 30년대의 극심한 불황에 휘말린 서민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묘사한 원작 소설의 시점이 스프링스틴의 음반에서는 90년대 고도자본주의 미국사회의 뒷골목과 그늘진 곳으로 옮겨온다 .
때문에 12곡의 수록곡 전반을 관류하는 분위기는 자못 암울하고 냉소적이다.
전과자의 재범 충동(Straight Time)과 베트남 이민의 고통(Galveston Bay)과 고아형제가 마약에 탐닉하는 과정(Sinaloa Cowboys)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다. 무엇보다 이 음반의 특징은 「언플러그드(전기적 증폭장치를최대한 줄여 녹음한 음반)」라는 점에 있다.어쿠스틱 기타.하모니카를 주로 쓴 반주와 읊조리는 투의 보컬은 다분히 보브 딜런을 연상시킨다.『보브 딜런의 아류에 불과하다』는 혹 평까지 받았던 데뷔시절로 다시 회귀한 듯이 보인다.
이 때문에 그의 걸작 『Born to Run』이나 『Bornin the USA』와 같은 정통록으로 그를 기억하는 팬들에겐다소 실망을 줄 지도 모른다.일부 비평가들의 평처럼 드넓은 공연장을 가득 메운 관중앞에서 거침없는 샤우트 창법을 토해내던 스프링스틴에게 소극장 무대에서의 언플러그드 공연은 어딘지 부자연스러워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이번 음반은 스프링스틴이 일관되게 추구해온리얼리즘이 건조한 목소리와 담백한 반주로 설득력을 얻는데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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