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등수가 곧 엄마 등수?

중앙일보

입력

아이 성적 따라 헤쳐모여! “아이들 성적대로 엄마들이 모인다.” 어쩌면 오래된 얘기인지 모른다. 하지만 ‘끼리 끼리 문화’는 요즘 더 심해진 게 사실이다. 우수 학생 엄마들이 학원 정보를 공유하고 함께 과외교사를 물색하기도 한다. 이런 모임에 비판의 소리도 있지만 대부분 “어쩔수 없는 일 아니냐”는 반응이다. 

"특목고 준비
학생들 팀 짜 수업 주문도"


  ‘1등 엄마’인 김수정(37· 고양 덕양구)씨. 그는 작년 3월 아들의 초교 2학년 반(班) 첫 학부모 회의를 떠올리면 웃음이 나온다. 아무도 말을 걸지 않고 그후 모임에도 끼워주지 않더란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금세 상황이 바뀌었다. 우등생 엄마들이 김씨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김씨 아들이 유명 영어학원의 최우수반에 다니고 학습지 우수회원에도 뽑혔다더라”는 소문이 돈 직후다. 특히 담임교사가 “우리 반 1등”이라고 치켜세운 일이 결정적이었다.
  ‘아이 등수가 곧 엄마 등수’라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요즘은 엄마들 위상이 남편 지위가 아니라 자식들 성적 따라 춤추고 있다. 아이가 1등을 하면 덩달아 ‘1등 엄마’가 되는 세상이다.
  김정실(36·고양시 덕양구)씨는 “학부모회에 가면 이번 시험에서 누가 1등 했는지 금방 알 수 있다”고 귀띔했다.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으면 틀림없이 그가 1등 엄마다.
  아이 성적에 따라 ‘노는 물’도 달라진다. 1~5등, 5~10등 식으로 학부모군(群)이 생기기도 한다. 학교의 무리 짓기는 학원까지 연장된다. 학원에서도 학부모 입김이 반 운영에 영향을 준다.
  소위 ‘톱클래스’ 엄마들의 유대는 유별나다. 이모(36·서울 강남구)씨도 딸의 영어학원 같은 반 엄마들과 주로 친목을 다지고 정보를 나눈다. 이런 친분은 일상 생활까지 연결된다. 쇼핑도 함께 하고 맛있는 음식점에도 함께 찾아 다니며 식사한다. 그러나 아이 성적이 떨어지면 엄마도 (모임에서) 떨어져 나가야 한다. ‘레벨이 1단계 이상 차이 나면 알아서 빠진다’는 규칙에 따른 것이다. 실제로 최근 한 엄마는 이같은 굴욕을 맛봐야 했다. 이에대해 이씨는 “반이 내려가면 교류 정보의 수준이 달라져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중학생들은 고교 진학 목표에 따라 엄마들 움직임이 달라진다. 이지외국어학원의 하영숙 상담실장은 “외고를 준비하는 학생들끼리 보통 4~5명으로 팀을 짜 수업을 주문해 온다”고 밝혔다. 요구사항도 매우 구체적이다. 교재·강사·커리큘럼을 꿰뚫고 있어 대번에 “그건 아니다”고 얘기할 정도다.
  1등 모임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고2 아들을 둔 이정선(51· 성남 분당구)씨는 “아이는 정작 실력이 안되는데 부모 욕심에 1등 그룹만 따라다니다 결국 적응하지 못하고 유학을 떠나는 경우도 봤다”며 안타까워 했다. 한 입시학원 관계자는 “이런 경우 엄마의 스트레스를 학생에게 옮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프리미엄 최은혜 기자
사진= 프리미엄 최명헌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