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솔직한 의견 교환’ 이란 의견 차이가 심각해 회담이 원만하지 못했음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외교 수사(레토릭)’에 지나지 않는다. 협상이 결렬 위기에 빠진 경우에도 “진지한 논의가 이뤄졌다”는 발표가 나온다. 반면 외교관의 입에서 ‘한 걸음 진전이 있었다’는 말이 나오면 이미 여러 걸음을 달려 타결 일보 직전일 가능성이 크다.
외교 수사를 잘못 알아듣고 실수를 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 지난해 10월 한나라당은 이명박 당시 대통령 후보와 부시 대통령 간의 백악관 면담이 성사됐다고 발표했지만 백악관은 이를 부인했다. 혼선의 원인은 “(면담) 요청을 적극 고려하겠다”는 백악관의 외교적 레토릭을 이 후보 측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 데 있었다.
외교관들은 가급적 완곡하고 우회적인 표현을 사용한다. 그러다 보니 ‘아니오’(No)란 단어는 금기에 가깝다. 마음은 ‘no’지만 입에선 ‘검토해 보겠다’ ‘최선을 다해 보겠다’란 말이 나온다. ‘결코’(never)란 말은 결코 써서 안 되는 말이다. 또한 최대한의 격식을 갖춰 정중한 표현을 써야 한다. “…해서 큰 영광입니다”(I have the great honor to…) 같은 표현들은 말 그대로 ‘입에 붙은’ 소리다.
말이 많거나 지나치게 솔직해도 곤란하다. 협상에 임하는 속셈이나 밑천을 드러냈다가는 상대방에게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 미국산 쇠고기 파문의 와중에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가 ‘실망했다’(disappointed)는 표현을 사용해 구설에 올랐다. ‘실망’이란 말은 ‘유감’(regret)이란 단어에 비하면 외교적으로 매우 이례적인 표현이다. 그는 또 “한국민들이 쇠고기에 대한 과학을 배워야(learn) 한다”고 했다. 한 외교관은 “learn이란 단어에는 ‘배우다’란 뜻 외에도 ‘알다’란 뜻이 있긴 하지만 사려 깊은 표현이 아닌 건 틀림없다” 고 말했다. 베테랑 외교관치고는 너무 직설적인 표현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정직이 최선의 방책’이란 외교 금언에 너무 충실했던 탓일까.
예영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