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란 기자와 도란도란] 안개 속 증시 … 펀드 가입할 때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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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부자는 상품을 팔지만 거부(巨富)는 철학을 판다.’

최근 만난 한 펀드매니저가 한 말이다. 펀드에 가입할 때도 상품 내용보다 운용하는 회사의 철학이 뭔지 따져보라는 얘기였다. ‘반짝’ 수익률이 높은 펀드를 팔아 ‘잠깐’ 동안 운용사가 뜰 수 있겠지만, 결국 오래 살아남는 운용사는 명확한 철학이 있는 곳이란다.

대표적인 예로 인덱스펀드의 창시자로 불리는 존 보글과 그가 설립한 운용사인 뱅가드를 들었다. 보글이 1974년 설립한 뱅가드는 인덱스 투자전략만으로 세계 톱10 운용사로 성장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덩치가 큰 펀드는 피델리티의 마젤란펀드가 아니라 뱅가드500 인덱스펀드다.

뱅가드에는 뚜렷한 운용철학이 있다. ‘장기적으로 사람은 시장을 이길 수 없다. 시장을 거스르는 게 아니라 시장을 따라가는(인덱스 전략) 투자를 해야 한다. 그렇다면 수수료를 낮추고 비용을 절약하는 것이 고객에게 최대한의 이익을 돌려주는 길이다.’

국내 운용사의 철학이 궁금해졌다. 홈페이지를 찾아봤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기본에 충실한 투자를 통해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수익을 창출’하겠다는 거다. 이를 위해 장기적으로 성장 가능한 우량주에 투자하는 가치투자를 실천한다는 전략이다. 삼성투신운용은 ‘고객 자산의 안정적 초과수익 실현’을 목표로 한다. 내부 리서치 조직을 활용한 철저한 종목분석을 통해 가치투자를 하겠단다. 한국투신운용은 역시 ‘고객의 기대를 뛰어넘는 성과와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며 가치투자를 강조했다.

한결같이 ‘가치투자’를 내세운다. 그러나 막상 펀드를 뜯어보면 헷갈린다. 가치투자의 의미도 사뭇 다르다. 국내 가치투자의 ‘간판’으로 꼽히는 한국밸류자산운용은 기업의 내재가치에 비해 주가가 싼 종목을 찾는다. 주가수익비율(PER)·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은 주식을 주로 사는 건 이 때문이다. 회사가 발표하는 불확실한 수익 전망 같은 건 잘 믿지 않는다.

반면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성장을 더 중요시한다. 서재형 주식운용1본부장은 “연간 50%씩 성장하는 회사와 5%씩 성장하는 회사가 있다면, 주가가 좀 비싸더라도 50%씩 성장하는 회사를 선택하는 게 당연하지 않으냐”고 반문한다. 지속적으로 성장 가능한 종목을 발굴해내는 것이 가치투자라는 것이다.

시장이 불안하다. 1900선 고지에 오르는가 싶더니 금세 1750선 언저리로 주저앉았다.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들다. 길을 잃지 않으려면 어떤 운용철학을 따를 것인지부터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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