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과 주말을] 부모 잃은 10대 소녀 … 마음이 뻥 뚫린 어른 … 모두에 따스한 온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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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꽃피는 고래
김형경 지음, 창비, 272쪽, 9800원

소설가 김형경씨가 4년 만에 펴낸 장편소설이다. 교통사고로 엄마·아빠를 잃은 10대 소녀 니은이의 이야기다. 이 아이가 견딜 수 없는 슬픔과 상처를 어떻게 치유해 성장하는지, 작가는 예의 섬세하고 따스한 시선으로 들려준다.

사고 이후 니은이는 고래 잡는 아빠의 고향마을, 처용포를 찾았다. 어릴 적 아빠가 들려준 ‘신화의 마을’은 공장이 들어서 병들고, 포경이 금지돼 고래배들은 자취를 감췄다. 변해버린 처용포에 남은 장포수 할아버지와 왕고래집 할머니 역시 니은이처럼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덩그러니 남겨진 니은이는 처용포에서도 마음의 파도를 주체할 수가 없다. 슬픔과 고통에 짓눌린 외로움과 분노가 압력밥솥의 수증기처럼 뿜어졌다.

“니가 시원하게 못 울어서 몸이 아픈 거다. 슬픔이 몸 안에서 돌아다니면서 몸을 두드리는 거지.” “잘 떠나 보낸 뒤에 마음 속에 살게 하기 위해서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니은이의 아픔을 다독인다. 이들의 공감과 위안은 생살을 드러낸 아이의 상처 위에 단단한 딱지를 앉혀 준다. 아이는 슬픔을 떠나 보내는 법을 배우고 조금씩 어른으로 자란다.

작가는 자신이 느낀 상실감에서 『꽃피는 고래』가 비롯됐다고 말한다. 그의 고향에는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이 있다. 바다로 흘러드는 그 강에서 멱을 감고 얼음배를 탄 기억만으로 작가의 마음은 풍요로웠단다. 하지만 다시 찾은 강은 냄새 나고 흰 거품이 끓어 올랐다. “이제 저 강은, 내 추억은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가.” 작가는 강가에 주저앉았다.

그래서 신간은 단순히 부모 잃은 청소년의 성장소설로 그치지 않는다.

“예전부터 늘 그것이 궁금했다. 유관순 언니가 독립만세를 부르다 옥에 갇혔을 때, 한석봉이 홀로 산에 들어가 붓글씨 쓰기에 전념했을 때 그들은 내 또래였다. 위인전을 보면 그들은 용맹스럽고 지혜로웠다. 위험하고 어려운 일고 맞닥뜨려도 굳은 신념과 자발적인 의지로 정의를 실천했다. 나는 언젠가 위인전 속 인물들을 만나면 꼭 한번 물어보고 싶었다. 진짜로 그 어린 나이에도 자기가 하는 행동에 확신이 있었는지, 겁나거나 도망치고 싶은 마음은 없었는지.”

“고아보다는 어른이 되기로” 마음 먹은 니은이의 말이다. 책 속의 위인을 불러다 묻고 싶은 이가 이 아이뿐일까. 홀로 남아 어쩔 줄 모르는 10대 화자는 다 자란 몸 안에 뻥 뚫어진 마음을 가진 어른들의 또 다른 모습이다.

작가는 니은이가 한 달 간 매일 받은 문자 메시지로 또 다른 힘을 얻듯 소설로 상처받은 어른들을 위로한다. ‘흐린 날. 오후에는 바람도 분대요. 따뜻한 국물 마시고 든든하게 하루 시작하세요.’ ‘광합성하기 좋은 볕이네요. 축축한 몸도 마음도 내다 말립시다.’ 사소해 보이는 문자로 니은이는 새삼 깨달았다. “문자메시지는 생각보다 힘이 세다”고.

문자 메시지를 들여다 보는 이 아이가 미소 짓 듯『꽃피는 고래』를 읽은 독자들도 마음 속에 따스한 온기를 얻을 터다.

홍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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