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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민주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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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촛불은 2000년대 한국 정치의 주요한 아이콘이다. 정치적 고비마다 늘 촛불이 등장했다. 첫 번째 촛불시위는 2002년 11월 서울 광화문에서 열렸다. 그해 6월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여중생 신효순·심미선양 추모행사였다. 두 여중생 사망 사건은 발생 당시 한·일 월드컵과 16대 대선 열기에 가려 주목받지 못했었다. 한 인터넷 신문의 시민기자가 이들을 추모하기 위한 인터넷 촛불시위를 제안한 것이 출발이었다. 이 움직임이 네티즌을 중심으로 확산되다가 11월 대규모 오프라인 촛불시위가 처음 열렸다.

이후 촛불시위는 국내 시위문화의 대표적 양식으로 자리 잡았다. 이전 시위들과는 성격이 달랐다. 촛불을 켜 드는 시위니 아무래도 폭력성이 덜했다. 폭력시위로 변질되는 경우가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1980년대식 시가전 개념은 사라졌다. 화염병과 짱돌, 메케한 최루탄 가스 대신 촛불과 노래, 공연, 자유토론이 등장했다.

촛불을 켜 드는 층도 다양해졌다. 정치시위의 전통적 주체였던 대학생과 노동자 이외에 주부·어린이·소년 등이 대열에 동참했다. 가족 단위 참여도 많아졌다.

처음부터 인터넷에서 발의된 것처럼 이후에도 인터넷이 기반이 됐다. 가령 경찰은 시위의 배후를 밝혀내려 하지만 상시적 조직을 갖추는 대신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다가 일시에 운집하는 웹 2.0 시위대의 배후를 캐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촛불시위대는 한 손에는 촛불을, 다른 한 손에는 디지털 기기를 들고 진화하는 시위문화, 정치 참여 방식을 선보이고 있다.

40일 넘게 이어지는 2008년 6월의 촛불시위대는 여기에 ‘직접민주주의의 실험’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지고 있다. 이번 촛불시위의 거점이 된 포털사이트의 공론장 이름이 ‘아고라’라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고대 그리스에서나 가능했던 직접민주주의를 인터넷과 촛불로 구현해보겠다는 ‘디지털 민주주의’의 야심도 느껴진다. 인터넷상에는 이미 ‘아고라당’ ‘촛불당’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역사학자 김정인은 이에 대해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느낀 네티즌이 직접민주주의를 껴안고 나갈 가능성이 크다”며 “대통령이 정치 무력화 상황으로 몰리면 네티즌의 정치 세력화 가능성도 있다”고 진단했다. 반면 소설가 이문열은 “위대하지만 끔찍한 디지털 포퓰리즘”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촛불시위는 오늘 밤에도 열린다. 뿔난 민심은 여전하고,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정부는 민심과 국제관계 속에서 전전긍긍하고 있다. 정부는 신뢰를 잃고 국회는 공전 중이니 직접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의 충돌을 막을 길도 없어 보인다.

양성희 문화스포츠 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