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의견>영화인 목소리 무시한 구호뿐인 영화진흥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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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될 예정인 영화진흥법이 말썽인 이유는 너무나 간단하다.현행 영화법에다 진흥이라는 이름만 더 달았을 뿐 달라진 내용이 거의 없는데다 어떤 부분은 영화진흥을 가로막는 새로운 조항을 보강(?)하기까지 한 법을 문화 체육부가 무리하게 국회에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문민정부 출범 후 뒤늦게나마 정부는 21세기가 영상산업경쟁시대임을 예견하고 94년 정부와 민간 합동으로 「영상산업 발전 민간협의회」라는 기구를 구성해 「차세대선도산업으로서의 영상산업의 획기적 발전을 위한 건의」라는 충실한 보고서까지 냈다.영화인협회에서도 95년3월 이 보고서에 기초해 그 동안 논의돼왔던 영화진흥법시안을 수정.보완해 발표했다.
그런데 95년 가을 문체부는자신들이 참여했던 「영상산업 발전민간협의회」의 보고서나 영화인협회의 시안도 깡그리 무시해버린 영화진흥법안을 입법예고 했고 이제 그 법안을 국회에 통과시키려하고 있는 것이다.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문 체부는 「올해가지나면 세계무역기구(WTO)체제와 관련해 법제화하기 힘든 지원조항을 삽입했기 때문에 연기하면 안된다」는 논리로 사정의 절박함을 얘기하고 있다.하지만 우리는 도대체 어느 조항이 적극적인재정지원조항 인지 알 수가 없다 .
어느날 갑자기 영화인협회가 긴급 이사회를 열어 문체부의 시안에 동조하는 듯한 결정을 내린 것에서 영화인협회의 어용적 한계를 절감한 영화인의 한사람이지만 그 결정이 영화인 대다수의 의견을 무시한 결정임은 곧 이은 「올바른 영화진흥법 제정을 위한영화관계자 연대모임」서명운동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아마도 찬성한다는 영화인 혹은 영화관계자가 있다면 분명히 그는 문체부안에 다음과 같은 점이 보완된다면 찬성한다는 단서를 붙였을 것이다.
첫째,영화제작과 관련한 불필요한 규제조항의 전면적인 삭제.
둘째,영화심의의 본래 목적에 걸맞은 완전 등급제 채택.
셋째,단편.소형 영화심의의 폐지와 이들에 대한 창작지원.
넷째,한국영화발전에 걸림돌이 돼온 영화진흥공사를 대체할 새로운 영화진흥기구 구성.
다섯째,서울종합촬영소의 정상적 운영을 가능케 할 여건 마련.
여섯째,대규모 영화진흥기금의 조성과 효율적 운용방안 모색.
일곱째,한국영화 의무상영제(스크린 쿼터제)를 실현할 여건 마련. 여덟째,영상산업 분야간의 유기적 연관성 확보.
88년 미국의 직배영화가 우리 시장을 잠식한 이후 줄기차게 염원해온 영화인들의 영화진흥법제정운동,아니 정보화시대 영상산업의 중요성이 이제 행정편의주의와 부처이기주의에 의해 물거품이 될 상황이다.
정지영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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