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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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아침 식사를 방으로 가져오게 했다.
보리빵과 마멀레이드,오트밀과 우유,생 햄과 멜론,달걀 반숙과커피가 바퀴 달린 식탁에 차려져 들어왔다.
『우리,아담과 이브 놀이를 해볼까요?』 활짝 열어 바다향기 넘치는 창가로 식탁을 밀고가더니 우변호사는 가운을 벗었다.알몸이다. 『이렇게 날씨 좋은 날이면 북유럽 사람들은 일광욕하기 위해 곧잘 알몸이 되더군요.그렇다고 알몸으로 식사까지 하는 건아니지만….』 우변호사는 소년처럼 웃었다.아침 햇빛이 근육질의몸매를 조각품처럼 비쳐내고 있었다.미켈란젤로의 다윗상과 같이 몸가락이 아주 청결해보였다.
알몸으로 식사하기는 난생 처음이다.보리빵 부스러기가 무릎위에떨어졌다.부끄러운 한편으로 편하고 자유로웠다.
『덴마크 사람들은 보수성과 혁신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어요.유럽에서 맨 먼저 여성이 참정권(參政權)을 가진 나라도 덴마크였습니다.1915년이었을 겁니다.』 「밖에서 잃은 것을 안에서 얻자」는 것이 「덴마크정신」이라고 그는 덧붙였다.덴마크는 15세기에 건국했으나 19세기에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가 싸워 영토를 많이 잃었고,제2차세계대전 땐 독일에 의해 크게 짓밟혔다.
외형적으로 잃은 것에 연연하지 않고 나라 안을 잘 개발하자는 뜻에서 이같은 덴마크정신이 다져진 것같다고 우변호사는 풀이했다. 흔히 농업국으로 알려져 있지만 기계공업.금속공업 외에 가구.도자기.실내장식등 디자인 공예를 눈부시게 발전시켜왔다고도 했다. 「알몸식사」의 대화 치고는 내용이 딱딱했다.그러나 그 엉뚱한 어우러짐에 오히려 신선감을 느꼈다.
여관 로비엔 작은 매점 코너가 있었다.냄비받침이며 모래시계등부엌용 수공예품과 함께 세련된 디자인의 장신구들이 즐비했다.모두 이 마을 사람들이 손수 만든 것이라 한다.디자인 공예에 뛰어난 나라라던 우변호사의 말이 실감났다.
그중에서도 특히 호박(琥珀)반지가 아리영을 사로잡았다.꿀빛깔의 투명한 네모 알 속에 금가루처럼 반짝이는 것이 박혀있다.자연석의 모습을 그대로 살린 솜씨가 돋보였다.
송진과 같은 수지(樹脂)가 오랜 세월 땅에 묻혀 생긴 화석이호박이다.「시간」이 만들어낸 보석이다.문지르면 전기 기가 생기는 성질을 지니고 있어 고대인들은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주술(呪術)의 돌」로 소중히 여겼다 한다.반지의 아름다움에 비겨 값이 놀랄만큼 쌌다.
『반지 하나 사주셔요.』 아리영은 우변호사에게 졸랐다.
『여기서요? 코펜하겐에 가면 더 좋은 것이 많을텐데….』 『여기 묵은 기념으로 이 호박반지를 갖고 싶어요.』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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