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종수 시시각각

촛불 너머로 휘청거리는 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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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집회가 정점에 이르렀다. 이명박 정부는 그 무능함을 만천하에 드러낸 채 백기를 들었다. 새 정부 출범 석 달여 만에 내각과 청와대 수석이 총사퇴했다. 건국 이후 유례가 없는 굴욕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청계광장과 서울시청 앞 광장에 모여든 촛불의 그늘에는 경기 침체의 음습한 불안감이 엿보인다. 그 촛불 너머로 신뢰가 무너진 정부와 함께 가라앉고 있는 경제가 보인다. 촛불시위가 벌어지는 그 순간에도 삶의 끝자락을 붙잡고 발버둥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광우병보다 더 무섭고, 훨씬 위험하며, 후유증도 큰 고유가와 인플레의 망령이 그 고달픈 삶을 짓누르고 있다. 이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고 좌절할 땐 촛불이 아니라 횃불이 타오를지 모른다. 구호가 아니라 정말로 살려내야 할 빈사(瀕死)의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는 것이다.

참 지지리도 재수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경제를 살리겠다며 집권한 정부에서 불과 석 달여 만에 경제가 이토록 속절없이 거꾸러지다니 말이다. 연 7% 성장에 1인당 소득 4만 달러, 7대 경제강국이라는 화려한 ‘747’ 공약은 벌써 빛바랜 지 오래다. 기름값은 천정부지로 뛰어오르고, 세계경제는 동반 침체의 기운이 역력하다. 그 바람에 국내 물가는 걷잡을 수 없이 오르고 젊은이들의 일자리는 갈수록 줄어든다. 억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치솟는 국제유가를 난들 어쩔 것인가. 가라앉는 세계경제를 변방의 소국이 어찌 일으켜 세운단 말인가. 문밖에서 휘몰아치는 사나운 광풍에 초가삼간의 호롱불이 가물거린다.

그러나 돌이켜 보자. 지금 겪고 있는 경제의 어려움이 오로지 남의 탓뿐이었는지. 지금은 어렵지만 앞으론 나아질 것이란 믿음을 갖게 했는지 말이다. 쇠고기 파동에서 여실히 드러난 이 정부의 늑장 대응과 무능은 경제정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멀리 보질 못하고 눈앞의 현상만 쫓아다니니 마음만 조급할 뿐 대책은 번번이 한 박자씩 늦는다. ‘747’ 공약에 매달려 7% 성장을 고집하다가 목표치를 6%로 내리더니 급기야 경기가 하강국면에 접어들었다고 고백한다. 성장목표에 집착해 환율상승과 금리인하를 부추겼다가 물가가 오르고 나서야 슬그머니 안정으로 돌아선다. 국제유가가 다락같이 오르는데 상승은 일시적이며 조만간 내릴 것이라는 구두선만 되뇌다가 부랴부랴 고유가 대책을 마련한다고 법석이다. 일하는 모양이 매양 이 꼴이니 뒤를 돌아볼 여유도, 앞을 내다볼 혜안도 없다.

산불의 위험이 큰 곳에는 불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방화선(防火線)을 만든다. 산에 큰불이 나면 발화지점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불에 탈 만한 것을 없애 빈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불난 곳을 일일이 쫓아다니며 물을 뿌려대다간 불이 번지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 그래서 아예 멀찍이 물러나 최후의 저지선을 두는 것이다. 그래야 소화제를 뿌리든, 맞불을 놓든 최선의 방책을 생각할 여유가 생긴다.

지금 이 나라에는 도처에서 불씨가 꿈틀거리고 있다. 광우병 촛불만이 아니다. 화물연대의 운송거부와 민주노총의 총파업이 줄줄이 예정돼 있다. 경제가 더 어려워지면 어디서 무슨 촛불이 거리로 쏟아져 나올지 모른다. 불꽃이 피어오를 때마다 허둥지둥 쫓아다닌다고 불길이 잡히지 않는다. 그보다는 멀찍이 방화선을 쳐야 한다. 그 방화선은 원칙과 소통이다. 경제가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실상을 국민들에게 솔직히 알리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장밋빛 수사로 감춘다고 현실이 달라지진 않는다. 지금 우리 경제는 경기침체와 인플레가 겹친 스태그플레이션의 위험에 직면한 게 사실이다. 대처방안은 한 가지, 물가안정을 바탕으로 견뎌 나가는 것뿐이다. 물론 고통스러울 것이다. 대신 이 고통의 시기를 감세와 규제개혁을 통해 성장잠재력을 키우는 과정으로 삼아야 한다. 그래서 장래에 그 고통이 헛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을 줘야 한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