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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태그플레이션 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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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국책연구원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9일 우리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져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경기 둔화 속에 물가가 크게 오르는 가운데 소비자들의 심리까지 급속도로 어두워지고 있다. 3차 오일쇼크 우려가 한국 경제를 ‘유가 상승→인플레이션+경기침체→소비심리 악화→소비 부진→경기침체→소비심리 냉각’의 악순환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KDI는 ‘6월 경제동향’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내수를 중심으로 완만한 경기둔화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물가가 급등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KDI는 “4월 중 경기 둔화 속도는 완만한 편이지만 내수 관련 지표들과 노동시장의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지난해 말 이후 물가 오름세도 가팔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KDI는 특히 “농산물 및 석유류를 제외한 근원물가지수가 5월에 3.9% 상승했다”며 “물가 상승 국면이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우리 경제의 앞날에 대한 소비자들의 시각도 많이 어두워졌다. 통계청은 9일 5월 소비자기대지수가 전달보다 8.2포인트 떨어진 92.2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2005년 1월(92.5) 수준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지수 하락폭은 2000년 11월 이후 7년6개월 만에 최대다. 이 지수가 100 아래면 6개월 뒤 경제를 낙관하는 이보다 비관하는 이가 더 많다는 의미다. 지수는 모든 소득계층과 연령층에서 100 아래로 떨어졌다. 특히 20대에서 하락폭이 컸다. 현재 경제상황에 대한 평가인 소비자평가지수는 72.2를 기록해 전달보다 7.8포인트 하락했다. 역시 2005년 1월 이후 최저치로, 기준치인 100에 한참 못 미친다. 현재 살림살이가 그만큼 팍팍하다는 의미다. 김영노 통계청 분석통계팀장은 “5월에 기름값과 물가가 많이 오른 것이 소비자들 심리를 크게 위축시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도 경제정책의 중심을 ‘성장 우선’에서 ‘물가 안정’으로 옮겨놓고 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한 라디오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물가가 크게 오르는 등 새로운 환경을 감안해 금리와 환율을 운용해야 한다”면서 “물가 때문에 ‘안정’이 우선 고려할 항목”이라고 말했다. 정부 내 대표적 성장론자였던 강 장관이 공식적으로 ‘물가 안정 우선’을 천명함에 따라 정부의 하반기 경제운용 방향도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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