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국가들, 新브레턴우즈 벗어나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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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호 35면

미국 달러화 가치가 하염없이 떨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글로벌 인플레 압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특히 아시아 국가들의 고통이 크다. 인플레 고통에서 벗어나는 첩경은 달러화와 결별하는 것이다. 이른바 ‘신(新) 브레턴우즈 체제(Bretton Woods Ⅱ)’에서 탈피하는 길이다. 아시아 국가들은 그동안 천문학적인 외환보유액을 동원해 미국 국채를 사들여 달러 가치의 고평가를 유도하는 대신 자국 통화 가치를 낮게 유지해 수출을 촉진해 왔는데 전문가들은 이를 ‘신브레턴우즈 체제’라고 부른다.

이제 아시아 국가들은 이 체제를 폐기하거나 자국 통화가치를 평가절상시켜야 할 때가 됐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완전 변동환율제를 채택해야 한다. 어느 것을 선택하든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신브레턴우즈 체제는 도이체방크 이코노미스트들이 만든 신조어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신흥 국가들과 미국 사이의 환율 정책과 국제적 자본이동 특징을 묘사한 것으로, 미국 달러에 대해 세계 각국이 고정환율제를 채택한 1944년 브레턴우즈 시스템에서 따온 말이다.

신브레턴우즈 체제 아래 아시아 국가들은 미 달러-자국 통화 환율을 수출에 유리한 수준에서 적극적으로 관리했다. 달러 가치가 미국의 재정·무역수지 적자 때문에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외환보유액을 동원해 미 재무부 채권 등 달러 표시 자산을 적극적으로 사들였다. 대신 아시아 국가들은 자국 통화가치를 낮게 유지해 수출을 늘릴 수 있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연간 3%대에서 안정적이었기 때문에 아시아 국가들은 물가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도 있었다.

반면 미국은 낮은 금리로 아시아 자금을 끌어들여 무역적자를 메울 수 있고 아시아 지역 제품과 서비스를 수입해 쓸 수 있었다. 이는 고객이 판매자에게서 돈을 빌려 제품을 구입하는 것(벤더 파이낸싱)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최근 국제유가 급등과 달러 가치 약세 때문에 아시아 각국은 인플레 괴물에 시달리게 됐다. 자국 통화가치를 의도적으로 낮게 유지하는 바람에 달러 가치 하락으로 빚어진 수입 물가의 상승이 고스란히 인플레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최근 물가상승률이 8%를 넘고 있는데도 기준금리는 지난해 말 이후 7.47%에 묶여 있다. 인도의 기준금리도 소비자물가 상승률보다 낮은 6%다.

아시아 국가들은 인플레를 억제하기 위해 금리를 인상하고 재정지출을 줄이는 긴축정책을 펴야 한다. 하지만 빠른 경제성장을 위해 그런 조치를 미루고 있다. 그 결과 중국 위안화 가치는 최근 3년 사이에 19% 올랐을 뿐이다.

중국이 먼저 나서야 한다. 이 나라가 방향을 전환하지 않는 한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기존 정책을 그대로 유지할 수밖에 없다. 중국 제품과의 경쟁을 의식해 위안화에 대한 자국 통화가치의 상승을 꺼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시아 국가들의 수수방관은 아주 나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금융 버블과 경기 과열이 그것이다. 물가 급등으로 사회적 불안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일부 나라에서는 이미 기름과 식료품값 상승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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