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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리트 저널리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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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1980년대 후반 미국에서 처음 등장한 ‘공공 저널리즘(civic journalism)’은 ‘시민 속으로 찾아가는 언론’을 표방했다. 시민(독자)을 수동적 소비자로 전락시키지 말고 뉴스 생산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시켜 공동체의 주체로 탄생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언론 또한 단순한 뉴스 전달자가 아니라 한 사회의 공공 영역이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데 기여해야 한다며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것이기도 했다.

언론학자 로젠은 공공저널리즘에 대해 “언론인들이 시민을 뉴스거리나 구경꾼으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공중으로, 그리고 시사적 문제에 대한 잠재적 참여자로 간주하며 문제를 아는 데 그치지 않고 해결하기 위한 정치적 행동을 모색하는 데 기여한다”고 썼다. 가령 선거 기간 중 공공저널리즘을 택한 언론사 기자들은 유권자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의견을 듣고, 정치권이 던져주는 이슈가 아니라 시민들이 제기하는 의제를 중심으로 취재했다. 미국에서는 2000년까지 10여 년간 213개 도시, 275개 언론사에서 550개의 공공저널리즘 프로젝트가 수행됐다.

이런 초기 공공저널리즘이 ‘시민을 찾아가는 언론’이었다면 인터넷으로 상징되는 기술 발달은 아예 시민이 저널리즘의 주체가 되는 시대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름하여 ‘1인 미디어’ ‘시민 저널리즘’ 혹은 거리의 기자를 뜻하는 ‘스트리트 저널리즘’의 탄생이다.

1999년 시애틀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반대시위에서 시위대는 휴대전화와 미국·유럽의 60여 개 인터넷신문이 연대한 ‘인디미디어(Indymedia)’를 통해 자신들의 요구를 세계에 알리며 주목받았다. 2005년 런던 지하철 테러 때 시민이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은 현장 사진이 세계 언론을 탄 것도 스트리트 저널리즘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언론 접근이 제한된 티베트와 미얀마의 시위 현장을 전하는 시민들의 동영상이나 UCC도 마찬가지다. IT 강국인 한국은 오래 전부터 시민 저널리즘의 샘플로 주목받고 있다.

최근 광우병 정국 역시 스트리트 저널리즘의 경연장이라 할 만하다. 무선인터넷과 노트북을 이용해 현장을 생중계하는 거리의 기자들이 넘쳐난다. 웹 2.0 시대, 뉴스의 수용자였던 시민들이 스스로 보도와 유통을 주도하는 ‘생비자(생산적 소비자)’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스트리트 저널리즘에는 객관성 부족, 아마추어리즘, 과(過)일반화와 지나친 감성주의 등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 사회가 또 한번 미디어 교과서의 한 장을 쓰게 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동시에 촛불정국의 스트리트 저널리즘은, 권력은 미디어에서 나온다는, ‘미디어가 권력’이라는 명제도 새삼 확인시켜 준다. 이제 진짜 필요한 것은 이처럼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미디어 간 진검승부일지도 모른다.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