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수 재정부 장관과 김중수 경제수석은 ‘어디 갔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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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수 장관(왼쪽)과 곽승준 수석은 인수위 시절부터 관료파와 민간파의 양대 축에 서 있었다.

이코노미스트 “내 참 나라가 어디로 가려고 하는 건지… 지금 대통령 혼자 말 타고 백만대군 이끌고 있는 꼴입니다. 누구 하나 힘을 실어줘야지 장관이고 중간 간부고 없잖아요. 경제팀이 이리저리 휘청대는 것도 대통령 눈치 보느라 급급해 그러는 겁니다.”

새 정부 요직을 맡고 있는 한 고위 공직자의 말이다. 대통령을 보좌해 이끌어 나갈 사람은 없고 모두 눈치 보기에 급급한 형국이란 것. 그나마 소신을 가지고 일하는 건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뿐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문제는 강 장관의 ‘소신’이 내부에서조차 잘 먹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강 장관이 취임 이후 줄곧 주창한 경상수지 개선을 위한 고환율 유지 정책도 지난 5월 27일 외환당국이 20억 달러를 시장에 내다 팔면서 한풀 꺾였다. 급등하는 유가와 물가 부담이 그의 고집을 지탱하지 못하게 한 것.

추가경정예산 편성도 강 장관 혼자 ‘마이 웨이’를 외치다 결국 다음 국회로 넘어갔다. 가장 큰 이유는 여당인 한나라당조차 강 건너 불 구경하듯 한 것. 정책의 옳고 그름을 떠나 청와대와 정부, 그리고 여당인 한나라당의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새 정부 경제 라인은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을 축으로 김중수 청와대 경제수석, 곽승준 국정기획수석,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 전광우 금융위원장으로 꾸려졌다.

실용적 시장주의를 표방한 MB노믹스를 실현할 이들 경제팀은 역대 어느 정권보다 막중한 책임감을 안고 출범했다. 좌파 10년 정권 물갈이의 핵심 어젠다는 ‘경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자와 관료 출신이 어우러진 이들 경제팀은 출발부터 삐걱거렸다. 서로가 가진 장단점을 보완하지 못하고 겉돌면서 이렇다 할 정책 하나 제대로 내놓지 못하고 있다.

강 장관이 주창한 고환율 정책에 대해 김중수 경제수석이나 전광우 위원장의 생각은 애당초 달랐다. 규제완화와 시장경제를 중시한다는 친시장주의자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정부의 역할과 글로벌 경제의 인식에서 차이를 보인 것.

김 수석의 한 지인은 “대외 개방을 통해 경쟁과 효율을 높여야 한다는 경제관을 가진 사람이라 강 장관의 고환율 정책에는 동조하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물가나 금리, 환율에 대해 어떤 소신 있는 목소리를 낸 적이 없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입장에서 ‘입’이 있을 수 없다는 말도 있으나 어쨌든 경제정책과 관련한 조정자의 역할은 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는 “쇠고기, AI, 물가 등 급하게 해결해야 할 현안이 많은 데도 경제수석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쓴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김 수석은 MB와의 인연도 깊지 않은 데다 인수위 시절부터 MB 측근으로 실권을 가진 강만수 장관이나 곽승준 수석의 틈바구니에서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처지가 아니지 않겠느냐”고 분석했다.
세계은행 이코노미스트 출신인 전광우 위원장도 정부 내 입지가 확고하지 못해 본인의 소신을 펼치기엔 힘이 부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다면 구도는 강만수 장관 대 곽승준 수석으로 좁혀진다. 인수위 시절부터 이 둘은 MB의 최측근으로 관료파와 민간파, 보수와 신개혁 세력의 양대 축에 서 있었다.

인수위 당시 기자와 만난 곽 수석은 “MB가 추구할 개혁을 이끌어 갈 새 정부 경제팀은 기존의 고루한 틀에서 벗어나 시장을 전폭적으로 믿는 철저한 시장주의자들이 장악해야 한다”며 “개발경제 시대를 거친 관료 출신들은 정부 간섭을 최소화하는 정책을 펴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딱히 꼬집어 말하진 않았지만 강 장관을 염두에 뒀던 게 아닌가 생각된다.

강 장관은 인수위 시절 “나는 분명히 오른쪽으로 기운 시장주의자다. 시장의 힘과 잠재력을 믿기 때문에 기업의 역할을 중시하고 기업에 관대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그가 시장을 정부가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는 건 환율 개입 발언들로 여러 차례 증명됐다.

강 장관-곽 수석의 ‘메가뱅크’ 대립

최근 있었던 강 장관 대 곽 수석 불협화음의 대표작 중 하나가 ‘메가뱅크’안이다. 강 장관은 지난 3월 말 금융위의 대통령 업무보고 자리에서 “한국의 경제 규모가 아시아에서 3위인데 한국 최대 은행이 세계 70위 규모밖에 안 된다”며 “산업은행 민영화는 아시아 10대 은행을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산업은행 민영화를 심도 있게 재검토하고 최종 방침을 확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메가뱅크 안은 금융위가 내놓은 산업은행 우선 매각의 틀을 뒤집는 것이었다.

강 장관 발언 직후 전광우 금융위원장은 “기획재정부의 메가뱅크 설립 구상은 MB의 작은 정부, 큰 시장 철학과 배치된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결국 메가뱅크 안은 논란을 일으키다 산업은행 단독 매각으로 일단락됐다.

‘서로 합치거나 덩치를 키우는 것은 시장이 할 일이지 정부가 앞장설 일은 아니다’는 문제점이 지적됐다. 금융정책의 주도권을 일단 금융위가 쥐게 된 셈이다.

메가뱅크 소동은 표면적으론 강 장관과 금융위의 대치로 보이지만 속내를 보면 강 장관과 곽 수석의 파워 게임이라는 분석도 있다. 현재 금융위가 내놓은 산업은행 민영화 모델이 곽 수석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곽 수석은 대선 선대위 정책기획팀장 시절 산업은행 민영화 방안의 초안을 짜 국내 대표적 금융통인 서울대 이창용 교수에게 들고 갔었다. 이 교수는 현재 금융위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지난 5월 26일 이 부위원장은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나와 곽 수석이 초안을 만든 것은 맞고 그대로 진행되고 있다.

우리(곽 수석과 나를 포함한 금융위 관련자들)는 단 한 번도 메가뱅크 안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며 “메가뱅크 안은 은행 민영화 과정에서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의견 중 하나였을 뿐 원칙은 초안대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강 장관의 소신이 꺾인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노 코멘트”라며 말을 아꼈다. 메가뱅크 파동에서는 신개혁파의 선두주자인 곽승준 수석이 일단 기선을 잡은 셈이다.

강 장관의 마이웨이만 비판 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강 장관 측근인 한 관료 출신 공무원은 학자 출신 청와대 수석들에 대한 노골적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도대체 경제수석과 국정수석 역할이 뭐냐. 한·미 FTA, 쇠고기 파동으로 연일 수십만 명이 참가하는 집회가 계속되는데 큰 그림에 대한 대안은 안 내놓고 경제수석은 침묵, 국정수석은 공기업 민영화에만 매달려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모 대학의 경제학과 교수는 “장관은 장관의 역할을, 수석은 수석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 역할을 못하고 있어 경제팀이 매끄럽게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며 “특히 수석은 경제적 마인드와 정무적 마인드를 고루 갖추고 각 정부 부처와 대통령 간의 원활한 소통을 이끌어야 하는데 정치 능력이 없는 민간 학자 출신들에겐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팀은 여당의 지지를 못 받으면서 더욱 휘청대고 있다. 한나라당 새 정책위 의장을 맡은 임태희 의원은 정부의 추경예산 편성에 대해 반대 입장을 확실히 하고 있다.

임 의원은 최근 본지와 통화에서 “경제 관료들이 너무 지표에만 신경 쓰는 것 같아 안타깝다. 성장률을 올리기 위한 정부의 추경예산 편성에 대해 찬성하지 않는다”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권에선 경제팀과 청와대 참모진 교체론까지 들고 나온 상태다. 정무 능력과 경제 마인드를 두루 갖춘 정치인 출신이 입각해 소음을 줄이겠다는 것. 물갈이 대상으로 경제팀 관료 이름도 오르내리고 있다. 새 정부 경제팀이 좌불안석일 수밖에 없게 됐다.

박미숙 기자[splanet88@joongang.co.kr]

<이코노미스트 9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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