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응씨배 세계바둑선수권] 전갈의 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이 세 돌 9단 ●·후야오위 8단

장면도(193~206)=이세돌 9단의 바둑은 왜 초반에 다 죽을까. 서봉수 9단의 입에서 혼잣말처럼 흘러나온 말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죽었던 이세돌의 돌들은 마법처럼 되살아난다. ‘패’라고 불리는 주술을 통해 귀신 곡하게 살아난다.

후야오위 8단은 193에 하나 몰고 195로 따낸다. 백이 A로 하나 받아주면 곧장 끝내기로 들어갈 속셈이다. 하지만 이세돌은 이 절묘한 타이밍에 196으로 뻗는다. 팻감으로 위장(?)했지만 깊은 노림을 숨긴 수. 후야오위는 197로 받으며 ‘수가 없다’고 확인한다. 어딘지 으스스한 느낌에 자꾸만 눈길이 가지만 ‘수는 없다’고 재삼 다짐한다. 사실 그처럼 찜찜하면 ‘참고도’처럼 개운하게 뒷맛을 없애고 종국을 서둘러야 했다. 이긴 바둑인데 이것저것 너무 잴 필요가 없었다.

더구나 후야오위의 시계는 이미 제한시간을 넘겼다. 초읽기가 없는 대신 35분마다 2집씩 공제당한다. 서둘러야 했다. 하나 후야오위의 손은 205 쪽으로 향한다. 자존심과 초조감이 합작해 낸 수. 상대가 패를 해소하면 B로 둔다는 스토리. 흑은 아마 꽤 큰 차이로 이길 것이다.

턱을 괴고 있던 이세돌 9단이 허리를 쭉 편다. 바로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206으로 낮게 달려든다. 직감적으로 이상한 수다. 아니 생긴 게 꼭 전갈의 침 같다. 아프지는 않지만 치명적인….(198·201·204=패 때림)

박치문 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