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투데이

대만 민주주의 어디로 가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대만 총통선거가 끝났다. 민진당 후보인 천수이볜(陳水扁)총통이 국민당 주석인 롄잔(連戰)후보를 근소한 차로 따돌리고 승리했다. 647만표 대 644만표. 겨우 3만표 차에, 33만여표가 무효표다 보니 패배한 連후보 진영은 재검표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번 총통선거는 또 하나의 사건을 낳았다. 선거 하루 전인 지난 3월 19일 타이난(臺南)에서 陳총통이 피격 당한 것이다. 아마도 陳총통은 총격사건 이후 급격히 늘어난 동정표가 아니었다면 재선의 꿈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피격사건 직전까지만 해도 경제 실정과 陳총통 부인 우수전(吳淑珍)여사의 주식 불법투자 등 악재가 불거지면서 陳총통 진영은 수세에 몰려 있었다. 필자가 선거 1주일 전 방문한 대만의 분위기는 連후보 진영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번 선거에선 후보자들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진 탓인지 2000년 선거 당시 82.7%이던 투표율이 70%대 중반으로 떨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투표율은 80.3%까지 치솟았다. 3.19 총격사건의 충격이 투표율을 이만큼 끌어올린 셈이다. 투표율이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고정표' 40%를 확보한 連후보가 유리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던 만큼 총격사건은 명백히 陳총통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최종 표 차가 3만표라는 점을 감안하면 총격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連후보가 승리했을 가능성이 크다.

3.19 총격사건을 놓고 "기사회생을 노린 陳후보 측의 자작극"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하지만 전 세계가 주목하는 총통선거에서 이 같은 대음모를 꾸몄다고는 상식적으로 생각하기 힘들다. 대다수 대만인은 국민당의 승리를 바라는 마피아의 소행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앞으로 대만의 정치적 상황이 매우 유동적이라는 것이다. 이제 와서 선거 결과를 뒤집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재검표와 사건의 진상 해명을 둘러싸고 대만 정국은 분명 분열할 것이다. 대만의 젊은 민주주의는 큰 시련에 직면하고 있다.

이번 선거 결과에 적지않은 충격을 받은 것은 바로 중국이다. 중국은 애써 평정을 가장하고 있지만 내심 連후보의 승리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나마 중국에 위안이 된 것은 총통선거와 동시에 치러진 국민투표가 부결됐다는 점이다. 陳총통을 지지하는 일부 유권자조차 대만의 국방력 강화와 중국과의 대등한 협상을 묻는 국민투표에는 반대했다. 어떤 형식의 국민투표에도 반대하고 있는 중국은 이 같은 투표 결과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중국은 과거 두 차례의 대만 총통선거에서 잇따라 실패를 경험했다. 1996년 리덩후이(李登輝)와 2000년 천수이볜이 출마하자 중국은 강한 반대 입장을 보였다. 이것이 오히려 대만 독립지지파의 표를 늘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중국은 이번엔 미국을 이용해 陳총통이 추진하는 국민투표를 견제하는 동시에 6자회담에서 전적으로 미국에 협력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오늘날 대만 문제에는 두 가지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첫째, 과거 현상유지를 주장해온 대만이 독립을 공개적으로 거론하고, 통일문제에 적극적이던 중국은 오히려 현상유지를 주장하는 쪽으로 입장이 역전됐다는 점이다. 둘째, 과거 대만 문제를 전적으로 국내 문제로 간주하고 내정간섭을 허용치 않던 중국이 이번엔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국제 문제로 격상시킴으로써 대만을 견제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당분간 대만의 통일 혹은 독립과 같은 대변화는 일어나지 않겠지만, 정치 게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대만 문제가 한반도 문제와 함께 동아시아 안보의 최대 주제가 될 것이라는 전망에 큰 이견은 없어 보인다.

고쿠분 료세이 일본 게이오대 동아시아硏 소장
정리=박소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