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 과정 되짚어 보니 … 정상회담 타이밍 맞추려 쫓기듯 협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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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국의 쇠고기 검역 조건은 한·미 쇠고기 협상이 타결된 4월 18일을 기점으로 완전히 달라졌다. 종전에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검역주권을 고수해 온 나라였다. 하지만 미국 측 요구를 받아들여 협상을 타결한 이후 상황이 바뀌었다. 게다가 정부의 충분한 설명도 없었다. 국민의 반발은 그래서 커졌다.

통상 전문가들은 “협상이 꼬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한국의 협상 전략과 시한이 미국에 미리 노출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시간에 쫓기고 속내가 드러난 상황에서의 협상은 백전백패라는 얘기다.

미국은 처음부터 미국산 쇠고기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연계했다. 그러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 일정에 맞춰 압력의 강도를 최고조로 높이는 전략을 구사했다. 미국은 한·미 정상회담(4월 19일)에 맞춰 협상을 4월 초에 시작하자고 요구했다. 한국은 총선 하루 뒤인 10일 협상을 한다고 발표했다.

협상 초기에 양측은 평행선을 달렸다. 한국 측 협상 대표인 민동석 농림수산식품부 농업통상정책관은 14일 중간 브리핑에서 “한국은 30개월 미만 소에 한해 뼈를 포함한 쇠고기를 수입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미국은 모든 연령과 부위의 제한을 두지 말라는 기본 입장을 반복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정운천 농식품부 장관은 어이없는 발언을 했다. 그는 축산·농민단체 대표들과 만나 “나라끼리 현안이 있으면 국가 영수들이 토론을 원활히 하도록 사전에 실무적으로 협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쇠고기 협상이 한·미 정상회담을 위한 사전 실무협의라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15일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정상회담 전에 타결될 것이라는 말이 돌았다. 소문 그대로 한국은 이 대통령이 정상회담 장소인 미국의 캠프 데이비드에 도착하기 11시간 전인 18일 오후 6시에 협상을 타결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협상에 정통한 경제부처의 한 관리는 “처음부터 잘할 수 없는 협상이었다. 한국이 시간에 쫓긴다는 것을 안 미국이 한국의 약한 부분을 파고들었다”고 말했다.

협상팀의 전문성도 떨어졌다. 협상팀에 통상전문가는 민 차관보와 옛 해양수산부 출신 과장이 고작이었다. 이 과장은 어업 분야의 협상 경력은 있지만 쇠고기 협상은 생소했다. 쇠고기 협상 경험이 있는 전문 통역사도 없었다. 반면 미국의 통역은 주한 미국대사관의 경제참사관으로 쇠고기 협상 때마다 참여한 인물이었다.

동국대 곽노성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정상회담 때문에 시간에 쫓겼고, 협상단의 전문성에서 미국에 뒤진 결과 밀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김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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