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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차, 또 깜빡하셨나요?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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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호 24면

새벽 골프를 치기 위해 차에 오른 K씨(48). 시동을 걸자 막상 골프장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서둘러 집 안으로 들어가 부산을 떨던 그는 어이없다는 듯 다시 차로 돌아왔다. 메모한 종이를 골프백에 넣어둔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골프장에서 몇 홀을 돌던 그는 이번엔 휴대전화를 받고 화들짝 놀랐다. 이날 대학 동기 모임에서 등산을 가자고 약속한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건망증은 때때로 불필요한 기억을 지워 버리도록 도와주는 ‘신의 선물’이다. 하지만 사회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중요한 내용을, 그것도 빈번하게 놓친다면 자신의 건망증을 심각하게 점검해 봐야 한다.
 
술 마시고 ‘필름이 끊겼다’면…

한 편의 영화를 매일 처음 대하듯 즐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매우 간단하다. 우리 뇌 속의 해마라는 조직을 제거하면 된다. 기억력은 사람마다 다르고, 컨디션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뇌기능의 효율은 뇌 속 기억체계와 관련돼 있다. 우리가 시각·청각·후각·미각, 그리고 피부감각이라는 오감을 통해 포착한 외부 정보는 뇌 속 기억센터의 첫 관문인 해마를 통과한다. 이것이 바로 기억의 첫 단계다. 방금 한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건 해마에 아예 정보가 입력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술을 마시고 ‘필름이 끊어졌다’고 하는 것도 해마가 알코올에 마비돼 정보 입력을 게을리 한 거라고 보면 된다. 치매 환자 역시 해마 영역부터 손상을 받는다. 이 때문에 과거의 일은 잘 기억하면서 최근 일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해마를 통해 입력된 정보는 단기 저장창고인 측두엽으로 보내져 잠시 보관된다. 이곳에서 가공 분류된 다음 중요한 것은 다시 대뇌신피질 각 부위에 고루 장기 보존된다. 이것이 기억의 두 번째 단계다. 측두엽에 정보가 보관되는 기간은 매우 짧아 몇 분에서 며칠에 불과하다. 예컨대 며칠 전에 외운 영어 단어가 일부 생각나지 않는 것은 측두엽이 정보를 제대로 갈무리해 저장하지 않은 탓이다.

하지만 아무리 정보를 잘 보관해도 잠재워 두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뇌신피질에 보존한 기억을 필요할 때 꺼내 사용하도록 도와주는 부위가 전두엽이다. 이곳에 분포된 뉴런이라는 신경회로가 바로 기억을 되살려내는 네트워크다. 어떤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다가 연상작용을 하면 ‘아, 그랬었지’ 하고 무릎을 치게 되는 것은 전두엽에 잠자고 있던 정보를 자극을 통해 꺼내 쓰는 과정이다.
 
‘깜빡’과 ‘깜깜’ 건망증의 차이

이런 기억 과정에 따라 건망증에도 종류가 있다. 예컨대 ‘돌아서면 잊어 버린다’ ‘방금 들은 전화번호가 생각나지 않는다’와 같이 ‘깜빡’하는 건망증은 해마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컴퓨터로 치면 정보 입력장치인 자판이 부실한 것이다. 특히 기보드에 두 개의 원고를 동시 작업할 수 없듯 정보가 한꺼번에 들어올 경우 해마는 순서를 정해 이 중 하나만 취한다.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입력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다음은 단기 기억창고인 측두엽에서 버리거나 잘못 갈무리한 정보 때문에 나타나는 건망증이다. 며칠 전에 외웠던 노랫말 중 한 구절이 생각나지 않는다거나, 주차해 둔 차의 위치를 몰라 헤매는 경우다. 우리가 매일 먹는 식사의 메뉴를 기억하지 못하거나, 주차 위치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측두엽에서 쓸데없는 정보를 쓰레기 봉투에 담아 처리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전두엽에 잘 가공해 보관한 정보가 ‘깜깜’한 장기 건망증이다.

이마 쪽에 있는 전두엽은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든 1등 공신이다. 침팬지에게도 없는 이마가 발달한 것은 바로 전두엽 때문이다. 전두엽은 기억·사고·판단을 하는 ‘종합상황실’로 이 부위가 발달할수록 지능지수가 높다. 기억력이 좋은 이들은 전두엽 중에서도 정보를 되살려내는 뇌 신경회로(뉴런)가 잘 발달돼 있는 경우다. 같은 양의 뇌세포가 있다고 해도 신경회로가 튼튼하고 잘 발달된 사람이 기억력이 좋다. 신경회로는 많이 쓸수록 발달한다. 산 속에 사람이 드나들면서 등산로가 생기고, 길이 넓어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지리에 밝은 운전기사가 목적지를 빠르게 찾아간다든가 요리사가 식재료의 맛을 기억해 음식의 조화를 생각하며 요리하는 것은 모두 반복 학습으로 뇌를 자극한 결과다. 실제 공간지각력이 뛰어난 운전기사의 뇌 특정 부위는 일반인에 비해 2∼3% 무겁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기억력을 높이고 건망증을 최소화하려면 뇌를 보호하고 적당히 자극해 줘야 한다. 우선 ^과중한 업무나 학업 스트레스로 뇌에 과부하를 주지 말고 ^뇌세포를 파괴하는 술과 담배를 삼가며 ^머리를 때리는 등 뇌에 충격을 가하는 일을 피하는 게 좋다. 이와 함께 해마가 있는 뇌 영역의 활동을 활발하게 해주는 커피 향이나 레몬 향, 책 읽는 소리, 씹는 행위 등으로 자극한다든지, 간단한 계산 등을 통해 뇌 트레이닝을 한다. 뇌에 좋은 레시틴이 많이 함유된 콩류나 달걀 노른자 등을 충분히 섭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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