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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한 ‘정치 DNA’ 보여줘야 생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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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호 16면

18대 국회 재선 의원들의 면면을 보면 여성 의원들에게 ‘국회에서 살아남기’가 간단치 않음을 알 수 있다. 4년 전 총선에서 화려하게 첫 등원했던 33명의 여성 의원 중 재선에 성공한 사람은 7명. 다섯 명 중 한 명꼴이다. 나머지 넷은 공천을 받지 못하거나 선거에서 패배했다. 박찬숙ㆍ심상정ㆍ김현미 전 의원 같은 ‘중량급 비례대표’ 의원들 역시 지역구 벽 앞에서 좌절했다.

17대 초선 33명 중 7명만 재선

지역구에서 재선 고지에 오른 사람은 한나라당 이혜훈 의원이 유일하다. 박근혜 전 대표의 경선 캠프에서 대변인을 맡았던 그는 막판까지 공천 여부가 불투명해 당내에 전운이 감돌기도 했다. 남편인 연세대 김영세(경제학) 교수까지 박 전 대표의 정책을 도와 확실한 ‘친박’으로 자리매김했다. 결국 공천에서 경합했던 박영아 의원이 서울 송파갑으로 전략 공천되면서 공천을 따냈고 본선에선 낙승했다.

통합민주당에선 박영선 의원이 유일하게 ‘2연속 등원’에 성공했다. MBC 기자 출신으로 17대 열린우리당 비례대표로 등원하기 전부터 대변인을 맡아 화려하게 정치권에 들어온 박 의원. 그는 남편(이원조 국제변호사)을 소개시켜준 인연이 있는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의 대선 캠프에서 후보 비서실장으로 활약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인 정두언 의원의 지역구(서울 서대문을)에 도전한다는 얘기가 돌았으나 서울 구로을에 출마해 한나라당 고경화 전 의원을 꺾었다.

한나라당에서는 전여옥 의원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KBS 도쿄 특파원 출신인 그는 등원 직전인 2004년 3월부터 당 대변인을 맡아 1년8개월 동안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여세를 몰아 2006년 7월 전당대회에 나서 최고위원에 당선됐다. ‘수퍼 초선’으로 이미지를 굳힌 그는 지역구 현역인 고진화 전 의원을 물리치고 당의 공천을 따냈다. 박근혜 전 대표의 측근이었지만 당내 경선에서 이 대통령을 지지해 ‘친박’ 유권자들의 표적이 됐다. 하지만 민주당 김영주 전 의원을 물리치고 당선됐다.

역시 당 대변인 출신인 나경원 의원은 상징성이 큰 서울 중구에 ‘낙하산 공천’됐을 만큼 대중적 인기가 뚜렷하다. 그는 당초 서울 송파병에 공천을 신청했다. 재선의 박성범 전 의원을 공천에서, 박 전 의원의 부인인 신은경 후보를 본선에서 각각 따돌렸고 지명도 있는 민주당 정범구 후보까지 주저앉혔다.

나 의원은 다음달 열리는 전당대회에서 여성 몫 최고위원에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지만 최근 제6정조위원장에 임명됐다. 진수희 의원은 이 대통령 경선 캠프에서 대변인으로 활약했다. 이재오 전 의원의 측근으로 일찌감치 이 대통령을 공개 지지한 진 의원은 당내 경선 과정에서 박 전 대표 공격의 선봉에 서는 악역을 맡았다. 대선이 끝난 뒤 진 의원은 대통령직 인수위의 정무분과 간사로 발탁돼 국가정보원 개혁 작업에 참여했다. 이런 경력을 바탕으로 지역구 공천을 손쉽게 따냈고 본선에서 최재천 전 의원을 접전 끝에 물리쳤다.

이번 총선을 가장 ‘아프게’ 치른 이가 박순자 의원이다. 선거를 보름 정도 앞두고 급성 충수염 진단을 받아 맹장 수술을 받은 것. 박 의원은 수술 부위를 붕대로 감은 채 선거운동을 다니는 투혼을 발휘해 화제가 됐다. 도 의원 출신으로 비례대표로 17대에 당선됐던 박 의원은 일찌감치 지역구를 찍고 공을 들여 열매를 맺었다.

친박연대 송영선 의원은 17, 18대 연속으로 비례대표에 당선된 유일한 케이스다. 여성 국방 전문가로 주목받았던 그는 한나라당 공천을 받지 못했지만 친박연대의 주축을 맡게 돼 ‘전화위복’이라는 얘기를 듣는다. 15대 때 국민회의 전국구 의원을 지냈던 신낙균 의원은 민주당 비례대표로 8년 만에 국회에 재입성, 재선 대열에 합류했다.

재선에 성공한 여성 의원 중엔 대선·경선 과정에서 네거티브전의 전면에 섰던 경우가 많다. 정치컨설팅 민기획의 박성민 대표는 “여성 의원들이 여성의 정체성보다 정치인의 정체성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경향이 강해졌다”며 “적극적인 목소리를 낸 여성 의원이 정치인으로서 생존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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